이탈리아에도 산나물로 만드는 봄요리가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였다. 하루는 셰프가 곤드레나물 비슷하게 잎끝이 삐죽한 채소를 잔뜩 가져왔다. 셰프 농장에서 따온 야생 근대, 쐐기풀이었다.
이 나물로 이탈리아 북부 전통 음식 ‘라바톤(rabaton)’을 만들었다. 라바톤은 ‘굴리다(rotola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됐다. 나물을 씻고 데쳐 반죽을 만드는 것은 한국 수제비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분 약간을 제외하고는 반죽 대부분은 나물인 점이 다르다. 또 파인 다이닝 요리인 만큼 모양이 정교하다. 지름 0.7㎝ 정도의 길고 매끈한 원기둥 형태다. 그래서 봄에는 매일같이 밤 12시까지 이탈리아 산나물 반죽을 굴리고 굴려야 했다.
만드는 품에 견줘 조리법은 간단하다. 나물 막대를 7㎝ 정도 길이로 잘라 오븐에 구운 뒤, 1인당 4~5개씩 얹어 치즈 소스를 뿌려서 나간다. 채집 상태 그대로 나물을 먹는 우리나라 조리법과는 달라 나에게는 꽤 인상적인 이탈리아 전통 요리였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주방에서 힘들게 만든 이 요리를 고객들은 대부분 남겼다. 쓴맛 탓이었다.
인간은 태아 시절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양수의 단맛을 느낀다. 이어 모유에서 단맛을 또 한 번 새긴다. 칼로리에 허덕이던 인류 조상에게 단맛이란 생존을 의미했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혀뿐 아니라 소화기관에도 단맛 수용체가 별도로 존재할 정도다. 온몸이 단맛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맛 나는 나물을 먹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의 농업생산력은 보잘것없었다. ‘눈물 젖은 빵’조차 귀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의 식민지 노릇을 했던 이탈리아 북부도 비슷했다. 우리나라가 나물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가난해서 먹던 쓴맛이 최근 미식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2026년 7대 음식 트렌드’의 하나로 쓴맛을 꼽았다. 엔다이브 같은 채소뿐 아니라 해조류, 차, 발효 식품으로 낸 쓴맛이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도 올해 음식 트렌드로 라디치오, 물냉이, 방울 양배추 같은 쓴맛 채소의 부상을 점쳤다.
이런 트렌드 이면에는 설탕에 대한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 쓴맛은 단맛과 즐기는 방법부터 다르다. 쓴맛은 원래 생명의 본능적인 저항에서 비롯됐다. 쓴맛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합성된 생명체의 화학 성분에서 나온다. 풀뿌리나 동물 내장의 쓴맛은 독을 의미하는 일종의 경고다. 이런 이유로 쓴맛은 영장류가 뱀을 봤을 때 느끼는 공포처럼 선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저항을 넘어서면 인간은 쓴맛에서 단맛이 주지 못하는 깊이를 느낀다. 면역력 강화와 각성효과는 덤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많은 수행자가 오지로 들어가 식물의 뿌리를 씹으며 깨달음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단맛이 즉각적인 몸의 반응이라면 쓴맛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는 단맛이 가지지 못한 탄탄한 스토리다. 게다가 산이나 들판 같은 오지에서 자란 청정한 생명체의 쓴맛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범람하는 단맛 대신 쓴맛은 혀가 아니라 머리로 느끼는 새로운 ‘달콤함’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