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확산은 이제 전방위적이다. 음악과 미술을 넘어 음식, 미용,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시공간의 장벽이 없다. 이처럼 동시다발적 문화 전파는 매우 이례적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공연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미국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많은 외국인은 삼성을 단지 전자제품 생산 기업으로만 알고 있다가,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수집해 국가에 기증한 기업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의 컬렉션을 공공에 환원하는 일은 그 사회가 공공성과 문화적 책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와 지식은 특정 개인의 소유일 때보다, 공공의 유산으로 확장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런 가치를 실천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큐가든을 세계 식물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성장시킨 조지프 뱅크스이다.
식물학에 관심이 많던 뱅크스는 젊은 시절부터 해외 원정에 참여했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 선장의 남태평양 원정대에 합류해 지구를 일주하며 여러 곳을 탐험했다. 호주 시드니의 ‘보타니만’이라는 명칭도 그의 대규모 식물 채집 성과를 기념하는 명칭이다.
귀국 후 뱅크스는 큐가든 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큐가 왕실의 사적 공간에서 세계 식물 수집과 연구의 거점이 되도록 이끌었다. 그는 해외에 식물 채집가들을 파견해 세계 각지의 식물을 수집했고, 이들이 수집한 씨앗과 표본은 큐가든으로 집결했다. 또한 식민지 작물의 도입과 재배를 추진해 영국의 경제력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이러한 체계적 수집과 재배 기술의 발전은 큐가 세계적 식물원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반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런던에 정착한 그는 자신의 저택을 거대한 도서관이자 표본실로 꾸미고, 수집한 표본과 장서를 널리 개방해 개인 컬렉션을 공적 연구의 기반으로 바꾸었다. 또한 왕립학회, 큐가든, 박물관, 개인 컬렉션을 연결해 자연 지식이 공유되는 제도적 체계를 구축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와 표본은 사후 공공 컬렉션으로 편입돼 대영박물관으로 이관됐다.
식민지 지배의 그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큐가든이 자연 보전과 공공 교육, 국제 환경 정책을 잇는 세계적 허브로 자리 잡은 데에는 뱅크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자연 지식의 공공적 효용을 중시한 그의 거시적 안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