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운동회에서 단 한 번도 앞선 주자를 제쳐본 적이 없다. 친구 손등에 찍힌 등수 도장이 부러워 몰래 흘끔거렸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나 젬병인 달리기이지만, 포기하기에는 미련이 남아 4년 전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달리기 열풍에 올라타 여러 차례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대회 경험이 쌓일수록 대회를 치르며 나오는 ‘마라톤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급수대 주변에는 일회용컵 쓰레기가 쌓여 있고, 먹고 버린 에너지 젤 껍데기가 발에 밟혔다. 체온이 오를 때까지 입다가 버리는 일회용 우의도 나뒹굴었다. 대회 규모가 클수록 쓰레기도 많았는데, 달리는 내내 지저분해 썩 유쾌하지 않은 대회도 있었다.
일회용품에 의존하는 마라톤 대회의 운영 구조상 쓰레기 발생은 피하기 어렵다. 당장 대회 현수막과 선수 배번표, 기록 칩, 급수대에 놓인 생수·음료 페트병·컵까지 모두 일회용이다. 택배와 물품 보관 봉지, 간식을 싼 비닐도 모두 한 번 쓰고 버려진다.
5000명 규모의 마라톤 1회당 발생하는 쓰레기 무게는 2.5t에 달한다고 한다. 2016년 기준 국내 마라톤 대회는 총 370차례로, 연간 마라톤 쓰레기만 925t이다. 축구장 10개를 완전히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최근 400개를 넘어선 대회 수와 4만명 넘는 대형 마라톤 대회를 감안하면, 마라톤 쓰레기 발생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톤 쓰레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대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점차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주말마다 도심 교통 통제가 반복되면서 마라톤 대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환경과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달리기 대회는 없을까. 여기 국내 최초 친환경 마라톤 ‘무해런’을 소개한다. 환경 분야를 담당한 덕분에 2년 연속 무해런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덕업일치’다.
급수대 물은 다회용 컵에 담아 제공하고, 배번표와 물품 보관 가방은 기부받은 재사용 종이봉투로 만든다. 기록 칩은 회수해 다시 쓴다. 간식은 뻥튀기에 올린 도넛, 밥은 다회용기에 담은 비빔밥이다. 부스 간판과 스타트 라인은 버려진 상자와 기증받은 물감으로 만든다. 지난해 500여명이 참가한 무해런에서 나온 쓰레기는 대형 안내 현수막 1개뿐이었다. 혼잡한 도심을 피해 한강변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교통 통제에서도 자유롭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느슨한 ‘환경 연대체’의 일원으로 여기기 때문에 대회 분위기는 유쾌하기만 하다.
무해런이 알려지면서 무해런과 닮은 친환경 마라톤 대회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무해런의 선한 영향력이 점차 퍼지는 모양새다.
무해런의 실험은 성공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친환경 마라톤은 일반 대회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 컵보다 수거해 세척해야 하는 다회용 컵에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간 후원과 자원봉사에 의존해 어렵게 대회를 이어왔지만, 내년 개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2027 무해런은 열릴 수 있을까. 올해 무해런 현장에 설치한 게시판에는 “내년에도 무해런 하면 좋겠어요”라는 응원글이 남겨져 있었다.
반기웅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