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며 레스토랑이나 셰프가 추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식재료의 풍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창의적 요리, 그림 같은 플레이팅,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섬세한 기술과 장인정신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 그리고 이를 이끈 셰프 레네 레제피는 그 정점에 오른 상징적 존재였다. 미쉐린 3스타를 획득했고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다섯 번이나 1위에 올랐다. 덴마크는 미식의 변방이었지만, 지역에서 조달한 농산물, 채집과 발효를 기반으로 그들이 선보인 ‘뉴 노르딕 요리’는 파인 다이닝의 흐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 몰락 역시 극적이었다. 노마의 전직 발효연구소장이 2월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마의 주방에서 벌어졌던 폭력을 공론화했다. 이를 계기로 뉴욕타임스는 전직 직원 35명을 인터뷰해 오랜 기간 노마의 주방을 지배했던 신체적 폭력과 심리적 학대의 문화를 지난 3월7일 보도했다.
당시 노마는 미국 LA에서 팝업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1인당 1500달러라는 가격에도 예약이 끝났고,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고 기업 스폰서가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레네 레제피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이 창립한 노마의 총괄셰프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은 우리가 화려한 겉모습을 보고 감탄하던 세계의 이면을 드러냈다. 파인 다이닝의 주방은 오래전부터 ‘열정’이라는 포장으로 유지돼왔다. 하루 8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근무시간, 고강도의 반복 작업,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는 이력서 한 줄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무급 인턴의 삶이 직업적 훈련을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서는 최고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믿음 그리고 이를 견뎌내는 것을 실력과 헌신의 증명으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마는 2023년에 정규 레스토랑 중단과 요리연구소 및 팝업 형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당시 무급 인턴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인해 유급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지속 가능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급 인턴에 의존하는 파인 다이닝은, 법적 혹은 윤리적 문제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대한 부정이다. 파인 다이닝은 영양과 맛을 공급하는 보통의 식사 이상의 경험을 본질로 한다. 일상의 필요를 넘어서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산업이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사람의 수작업을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은 무엇을 팔고 있었던 것일까.
이런 문제는 파인 다이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 70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사람이 일하는 업장에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제대로 된 빵이 나올 수가 없다. 빵 만드는 기계도 계속 돌리면 탈이 나는데 사람의 체력과 집중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가 다반사인 공장에서 만든 빵을 놓고 자신이 지금 무엇으로 만든 빵을 먹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제대로 된 환기시설이 없어 폐 건강을 해치는 급식조리실에서 학생들을 위한 위생적이고 맛있는 음식이 계속 나올 수는 없다.
외식 산업에 한정되는 얘기도 아니다. 예술, 미디어에서 업의 특성을 이유로 과도한 노동이 일상으로 여겨졌던 경험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래 가치를 창출한다는 스타트업에서 오늘의 초과노동이 정당화되는 현상, 노동시간 투입이 본질이 아닌 첨단 제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주 52시간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얘기도 의문이다.
노마의 사례는 최고라고 불렸던 레스토랑의 흥망성쇠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사회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가 최고 수준이라 여기는 성취는 무엇으로 유지되며,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면 지속 가능한가?
‘최고’ 또는 ‘파인’ 같은 수식어가 누군가의 희생과 침묵을 전제로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뿐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열정은 개인적 성취의 동기나 계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의 조건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온도 1도의 편차, 요리시간 몇초의 차이도 컨트롤하는 파인 다이닝에서 측정할 수 없는 타인의 열정을 계산에 넣으면 곤란하다. 최고의 성과를 내고자 하는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갈아넣지 않고도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 높은 표준을 유지하는 것과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양립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기준일 것이다.
유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