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심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말이 온라인상에서 ‘지령’처럼 확대 재생산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6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공적 발언과 사회적 영향’ 연구용역 최종결과 발표자료를 보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나온 뒤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혐오, 음모론으로 분류되는 댓글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치인 발언의 ‘핵심 어구’가 댓글에서 반복되는 현상도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연구진 문제 발언을 참사 직후 책임을 회피하거나, 유가족·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총 10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이상민 전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2022년 10월30일), 권성동 의원의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 “시민단체 횡령 수단” “종북” 등 SNS 게시글(2022년 12월10일), 김미나 경남 창원시의원의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잔 수작” “시체팔이” 발언(2022년12월12일 등) 등이 대표적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연구진은 이들의 문제 발언이 알려진 뒤 온라인상 댓글 담론에 유의미한 내용적 변화가 있었는지 분석했다. 수집 대상이 된 댓글은 일간지 홈페이지 4곳, 언론사 유튜브 8곳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 2곳에서 참사가 언급된 글 등 총 18만9226건이다. 수집 기간은 참사 당일부터 2023년 2월28일까지, 그리고 이와 비교하기 위한 시점으로 2025년 2월11일에서 올해 3월3일까지 총 두 구간이다.
이 전 장관의 “경찰 미리 배치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었다”는 발언이 보도된 후, 유족 혐오 댓글은 전날 238건에서 2022년 10월30일 2218건으로 1980건 급증했다.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댓글도 471건에서 1757건으로 늘었다. 이 전 장관 발언을 재인용한 댓글도 132건 게시됐다.
권 의원은 2022년 12월10일 이태원 참사에 빗대 세월호를 언급했는데 전날에는 댓글 5건에서만 세월호라는 단어가 나왔다. 하지만 권 의원의 언급 이후 209건으로 급증했다. 전날 ‘유족 혐오 표현’으로 분류된 댓글은 21건에 불과했지만, 권 의원 발언 후 283건까지 증가했다. 연구진은 “권 의원 발언 이후 ‘정쟁’ 프레임이 견고해졌다”고 분석했다.
2022년 12월12일 김미나 시의원의 “나라 구하다 죽었냐”는 SNS 게시글이 보도된 이후에는 희생자 혐오가 큰 폭으로 늘고, ‘나라 구하다 죽었냐’는 말이 댓글에서 새로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실제 발언 어휘가 재생산되고, 담론 구조가 재편됐는지 확인하는 ‘의미망 검증’도 진행했다. 참사 발생 초기인 2022년 10월29일~11월2일에는 국가의 책임을 묻는 단어 집단과 희생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단어 집단이 주로 나왔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의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은 댓글에서 ‘책임 부정’ 논리를 집약시키고, 참사 대응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일간지 홈페이지 4곳, 언론사 유튜브 8곳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2곳에서 참사가 언급된 글 중 2022년 10월29일~11월2일에 올라온 글에 대한 의미망 분석. 아르스프락시아 제공
2022년 12월8일~12월12일에는 권 의원의 세월호 발언 이후로 의미망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정부 책임’에 관한 의미망은 후퇴했고, ‘세월호·민주당’ ‘음모론·정쟁화’가 주요 내용으로 등장했다. 세월호·민주당·민주노총 등이 잇따라 연결돼 나왔다. 연구를 진행한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는 지난달 30일 연구결과 최종보고에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형태로 담론을 바꾸면서, 민주당·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음모라는 내용의 댓글이 늘어난 것”이라며 “정치인 발언이 공론장에서 일종의 ‘학습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일간지 홈페이지 4곳, 언론사 유튜브 8곳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2곳에서 참사가 언급된 글 중 2022년 12월8일~12일 올라온 글에 대한 의미망 분석. 아르스프락시아 제공
2022년 12월10일~14일에는 김 시의원의 “자식 팔이” 발언 이후로 유족 혐오가 급증해 유족·협의회·시체·수익 등 단어가 서로 연결돼 나타났다. 김 대표는 “유족이 금전과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재정의됐다”며 “공인들의 계속된 2차 가해성 발언이 생명력을 지속시키면서 ‘유족 혐오’가 정화되지 못하고 비가역적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일간지 홈페이지 4곳, 언론사 유튜브 8곳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2곳에서 참사가 언급된 글 중 2022년 12월10일~14일 올라온 글에 대한 의미망 분석. 아르스프락시아 제공
김 대표는 “이번 연구를 통해 공인의 발언이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허가’를 제공하고 혐오 담론을 강화하는 구조를 확인했다”며 “재난 관련 발언을 어떻게 제재할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김 시의원의 경우 SNS에 글을 올릴 때는 반응이 없다가 언론 보도 이후 반응이 급증했다”며 “언론이 인물의 발언을 보도하기보다, ‘공적인 무시’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