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버티는 사람은 가족이 있었다”…‘가족 인질극’ 없는 일터를 꿈꾸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버티는 사람은 가족이 있었다”…‘가족 인질극’ 없는 일터를 꿈꾸다

입력 2026.04.07 13:33

양성민씨가 지난 3일 부산시 부전동의 어느 한 카페에서  직장을 12번 이상 그만둔 것에 대해  “가난과 생활고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나 자신을 잃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박용필 기자

양성민씨가 지난 3일 부산시 부전동의 어느 한 카페에서 직장을 12번 이상 그만둔 것에 대해 “가난과 생활고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나 자신을 잃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박용필 기자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처자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현장을 떠난 사람과 끝까지 남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난 3일 부산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난 양성민씨(50)는 이렇게 답했다. “떠난 사람들은 저 같은 홀몸이거나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양씨는 최근 책 <인생여전>을 펴냈다. 2024년 제32회 전태일 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작가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책이다. 책에는 그가 10년 넘게 여러 육체노동 현장을 떠돌며 겪은 경험과 생각이 담겼다.

그는 택배기사, 조선소 물량팀, 공원묘지 관리원, 건설현장 노동자, 발전소 시설 유지·보수, 세탁업체 기계설비팀, CNC(컴퓨터 수치 제어) 공장의 이른바 ‘버튼 맨’, 농장 감 따기, 보도블록 시공 일용직 등을 거쳤다. 현재는 한 학교의 시설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거쳐 간 일터는 13곳이 넘는다. 12번 이상 ‘때려치웠다’는 얘기다.

한때 노동단체에서 각종 소식지와 서식 작업을 맡았던 그는, 발전소에서 일하던 시절 작업 대기 시간을 쪼개 책을 썼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노동단체에서 수년간 노동 상담을 했다”며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더 예민하게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단순히 ‘욱해서’ 그만둔 건 아니었다. 스트레스로 불면증이 일상을 무너뜨리고, 오른팔이 마비돼 자동차 시동조차 걸 수 없게 될 때까지, 방 안이 약봉지로 가득 차기 전까지 그는 버텼다.

“한 조선소 노동자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화면에 비친 방 한쪽에 약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더라고요. 제 방에도 같은 약봉지들이 있었어요. 그때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씨가 지난 2024년 경남 거제시의 한 조선소에서  엎드린 채 연마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양씨가 지난 2024년 경남 거제시의 한 조선소에서 엎드린 채 연마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책에는 현장 노동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절삭기계에 원재료를 물리고 작동 버튼을 누르는 ‘버튼 맨’ 작업을 하루 2000번 반복하며 그는 “왜 프레스 공정에서 종종 사람 손이 잘리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단순 작업자라는 이유로 각종 애매한 잡무가 자신에게 쏠리면서, 그는 매일 “이건 아니지 않나”를 되뇌었다.

내일 출항할 배의 페인트칠조차 끝나지 않아 철야 작업을 하며 퇴근 도장과 출근 도장을 동시에 찍어야 했던 일, 원청 감독자들이 쉬는 휴일에 하청업체끼리 ‘용접이 먼저냐, 도색이 먼저냐’를 두고 다투다 용접 가스관까지 절단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졌던 일도 소개된다. 두 사람이 들어도 버거운 감 상자를 혼자 들고 비탈길을 수백 번 오르내리다 허리를 다친 경험 역시 그중 하나다.

그런데도 끝까지 버티는 이른바 ‘고인 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겼다. 묘지 터를 파다 나온 큰 바위를 정과 망치 몇 번으로 쪼개버리는 35년차 고참 노동자인 ‘알코홀릭 영감님’, 일감을 따내기 위해 원청 관리자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팀장 같은 사람들이다.

양씨는 노동자들이 참을 수 없는 걸 참고, 견디기 어려운 걸 견디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술과 약을 달고 살아요. 그렇게라도 버티지 못하면 가족들이 거리로 나앉게 되니까요.” 그래서 그는 결혼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했다. “가장의 무게라는 게 어떤 건지 지켜봤으니까요. 가족이 ‘인질’처럼 잡히면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결국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한계 역시 느낀다고 했다. “한때 노동단체에서 소식지를 쓰던 제가 조선소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출근길에 나눠주던 소식지를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렸어요.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인 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었거든요.”

그는 비정규직 선배의 정규직 전환 논의 자리에서 한 정규직 노동자가 반대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유는 “편하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양씨는 “그들은 조합원이기 이전에 감독자이자 관리자였다”고 말했다. 직접 ‘우리만의 노조’를 만드는 일도 여의치 않았다. “(노조 같은 것에) 동료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할 일자리는 아니다’라는 생각인 거죠.”

양씨가 지난 2024년 12월 경남 산청의 한 농가에서 곶감을 따 가공 작업을 하던 도중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양씨가 지난 2024년 12월 경남 산청의 한 농가에서 곶감을 따 가공 작업을 하던 도중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그는 지급한 돈 이상의 성과를 뽑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일부 사용자들, ‘사실상의 지휘감독자’ 지위가 인정돼 법적 ‘사용자 책임’을 지게 될까 봐 관리에는 소극적인 일부 원청,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에서조차 형성되는 ‘갑을 관계’ 등이 이른바 ‘가족 인질극’이 벌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양씨는 현재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노동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갑과 을이 혼재돼 서로 쟁투를 벌이는 단상에 관한 얘기를 써보고 싶어요. 제목만 생각해뒀는데요. <갑을 전>입니다.”

  • AD
  • AD
  • AD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