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관계자 “예측 불가능성 이용한 협상 전술”
전문가는 “이런 말은 폭력을 정당한 것처럼 포장”
디애틀랜틱 “군주제 때조차 문명 말살 선포 안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 “나라 전체를 지워버리겠다” “문명 전체를 말살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원래 거칠고 호전적인 언사를 사용해 왔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대이란 전쟁이 시작된 후 그의 수사는 전 세계를 경악케 할 만큼 반인륜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발언은 실제 행동에 옮기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재앙’이며, 전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오전 소셜미디어에 쓴 “하나의 문명이 오늘 밤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란 말은 사실상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위협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 것이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지난 몇 주간 중동 전쟁에서 모든 당사자가 사용해 온 선동적 발언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한 문명 전체를 말살하겠다는 최근의 위협과 민간 기반시설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위협도 포함된다”며 “이는 매우 역겨운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는 “해당 게시물을 작성할 때 여러 보좌관이 참여했지만, ‘문명 말살’이란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란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을 활용한 협상 전술이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하지만 캐나다 맥마스터대 영문학·문화연구학과 석좌교수인 헨리 지루는 학술매체인 더컨버세이션에 “이런 말들은 파괴를 운명의 언어로 미화하며, 희생자를 가려지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의 언어는 오랫동안 명예를 위한 복수와 용기라는 수사로 포장돼 왔다”며 “이는 폭력을 심지어 정당한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어 “‘힘이 곧 정의’인 트럼프의 세계관에서 ‘십자군 전쟁’의 언어가 다시 부활한 것”이라고 말했다.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가 그 이면에 깔린 독재적 관점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명을 말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결심에 따라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만이 자신이 무얼 할지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디애틀랜틱은 “심지어 유럽 군주제 때도 왕이 한 문명을 말살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적은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필리프 볼로피옹 사무총장은 “전쟁법을 무시하는 위험한 수사가 확산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시 중 지도자의 말은 특히 중요하다”면서 “지도자가 전쟁 중 적을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조장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전쟁 수사는 매우 위험할 정도로 부식성이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