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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약속된 시간이 되자 헤드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울 한복판, 익숙한 거리가 낯선 무대로 바뀌는 순간이다.

'앞장서서 가는 사람을 믿을 수 있어?" "집단지성이라는 건 집단어리석음도 가능하다는 뜻이야" 음성은 삶과 죽음, 민주주의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매일 지나던 길,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익숙한 공간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순간,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사뭇 달라진다. 카렌바워는 "서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질서 있게 움직이는 도시라 공연을 진행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다"라고 서울의 인상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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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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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확장된 무대, 서울을 걸으며 배우가 되다…‘리모트 서울’

입력 2026.04.08 17:10

수정 2026.04.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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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정연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음성 가이드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음성 가이드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 주세요. 이제부터 다른 음성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헤드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울 한복판, 익숙한 거리가 낯선 무대로 바뀌는 순간이다. 30명의 참가자들은 이제부터 인공지능(AI) 음성의 안내에 따라 도시를 탐험한다. 걷거나 뛰고, 춤을 추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는 도시속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결정을 선택하고 반응하며 관객인 동시에 배우가 된다.

독일 창작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참여형 퍼포먼스 ‘리모트 서울’이 지난 3일 서울에 상륙했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헤드폰을 착용한 채 음성 안내에 따라 도시를 함께 이동하는 ‘오디오 워킹 투어형’ 공연이다. 2013년 베를린 초연 이후 뉴욕과 런던, 상하이 등 전 세계 30여 개국 65개 도시에서 공연된 ‘리모트 X’ 시리즈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음성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음성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4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만난 연출가 외르크 카렌바워는 “우리의 일상만큼 좋은 무대는 없다. 도시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무대”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리미니 프로토콜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약 3주간 서울에 머물며 서울의 지형과 사회 문화적 배경,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고, 이를 토대로 강남 지역을 관통하는 정교한 동선과 대본을 완성했다.

서울 버전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출발해 도보와 지하철을 이용, 약 120분간 강남 일대를 이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리모트 시리즈는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게 공연되는데 공동묘지와 교회를 거치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카렌바워는 “이 공연엔 ‘사후에 우리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주제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리모트 서울’의 연출가 외르크 카렌바워가 4일 GS아트센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리모트 서울’의 연출가 외르크 카렌바워가 4일 GS아트센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언뜻 음성 가이드 관광과 비슷해보이지만 공연은 도시 투어와는 거리가 멀다. 참가자들은 묘비 사이를 걷고, 서로를 바라보며 원을 이루고, 지하철에서 발레 동작을 취하는 등 일상에서는 쉽게 하지 않는 행동을 수행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를 새로운 감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을 뒤에 두고 산 자들을 향해 가” ‘앞장서서 가는 사람을 믿을 수 있어?” “집단지성이라는 건 집단어리석음도 가능하다는 뜻이야” 음성은 삶과 죽음, 민주주의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매일 지나던 길,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익숙한 공간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순간,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사뭇 달라진다.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가 서울국립현충원의 묘비 사이를 걷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GS아트센터 제공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가 서울국립현충원의 묘비 사이를 걷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GS아트센터 제공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고층건물에서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3일 개막한 ‘리모트 서울’ 참가자들이 고층건물에서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카렌바워는 “서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질서 있게 움직이는 도시라 공연을 진행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다”라고 서울의 인상을 설명했다. 다른 도시들과 달리 서울 버전에는 ‘개성을 드러내는 것과 규범을 따르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추가됐다. 사회적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튀는 것을 꺼리는 한국인들의 성향을 반영한 질문이다.

‘AI와 집단’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참가자들은 헤드폰을 통해 음성과 일대일로 연결된 듯한 경험을 하면서도, 동시에 수십 명과 함께 움직이는 집단의 일부가 된다. 카렌바워는 “AI와의 대화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음성을 들으며 움직일 때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이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AI에게 삶과 죽음을 묻는 시대”라며 “우리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모트 서울’은 다음 달 10일까지 매주 금·토·일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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