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중리돌봄건강학교에서 어르신들이 신체 활동 프로그램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대전 대덕구에 있는 한 아파트 상가 지하, 계단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소리를 따라 내려가자 양옆으로 방들이 길게 늘어선 복도가 나타났다. 이 중 거울이 설치된 한 방에 들어가자 어르신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강사의 구령에 맞춰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운동에 한창이다. 이날 마주한 활기는 대덕구가 방치된 상가 지하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임대받아 전국 최초로 시작한 ‘돌봄건강학교’에서 나오고 있었다.
지난 7일 이곳에서 만난 김정임씨는 3년째 매일 오전 10시 돌봄건강학교로 출근한다고 했다. 각종 프로그램을 마치고 오후 5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과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김씨는 “우울증으로 힘들었는데 여기 다니고 나서 많이 나아졌다”며 “여기 와 있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덕구는 지난달 27일 전국적으로 시행된 통합돌봄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현장이다. 이곳은 인구 16만 5535명 가운데 노인 인구 비중이 22.6%(3만 7459명)에 달할 만큼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다. 또 1인 가구는 3만4778가구로 42.8%에 달하고, 등록장애인은 1만663명인데 이 중 54%가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이다.
대덕구는 기존에 존재하던 돌봄·의료·주거 서비스를 엮고 보완하는 길을 택했다. 구청 산하 통합지원회의라는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복지 서비스를 연결했다. 기관마다 달랐던 전산 시스템과 의사결정 과정이 한 데 모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특정됐고, 이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도 명확해졌다.
“칸막이 허물자 사각지대가 사라졌다”
대덕구는 이를 토대로 ‘예방·발굴·집중돌봄’ 3단계 안전망을 구축했다. ‘돌봄건강학교’는 어르신, 장애인을 위해 도입한 ‘예방’ 프로그램의 대표격이다. 혼자 걸어 다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대상자는 돌봄건강학교에서 제공하는 총 18개 프로그램에 참여해 운동, 사회적 교류 등을 할 수 있다. 특히 ‘관절튼튼 운동교실’과 ‘보드게임’은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나성 중리종합사회복지관 부장은 “노인정은 기존 구성원의 공간이지만 이곳은 등록만 하면 누구나 올 수 있다”며 “어르신들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중리돌봄건강학교에서 어르신들이 보드게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장애인을 위한 돌봄건강학교는 별도로 있다.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축이 돼 발달장애인과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돕는 운동, 식습관 개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서용원 장애인종합복지관장은 “통합돌봄망과 연결된 이후 전체 250여 명의 이용자 중 절반가량이 새로 유입된 대상자일 정도로 돌봄 사각지대가 줄고, 혜택 범위가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외출이 어려운 대상자에게는 별도의 ‘발굴’ 체계가 작동한다. 대덕구는 동 행정복지센터, 복지관, 보건소 등 지역 기관이 현장에서 포착한 위기 징후를 통합지원회의에 올리면, 대상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붙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치매안심센터의 ‘양방향 연계’다. 센터가 경도인지장애나 경증 치매 어르신을 돌보다가 추가적인 복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자체 통합돌봄 대상자로 의뢰하고, 반대로 지자체가 찾은 통합돌봄 대상자 중 치매 관리가 필요한 이는 센터로 보내 전문적인 지원을 받게 하는 식이다. 김영은 치매안심센터 팀장은 “올해 센터에 등록된 어르신 중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4명을 지자체 통합돌봄망으로 신속하게 연계했다”고 말했다.
발굴망을 통해 찾아낸 이들 중 일상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경우 ‘집중돌봄’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는 주거·의료 융합형 안심주택 ‘늘봄채’다. 주거와 의료, 일상 돌봄이 동시에 필요한 이들이 요양원이나 병원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생활형 주택이다. LH 소유 빌라를 임대해 고령자 친화적으로 개조한 이곳에는 현재 11가구가 거주 중이다. 1인 가구 월세 11만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데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상주해 맞춤형 영양 급식과 일상 돌봄을 밀착 제공한다.
대전 대덕구 케어안심주택 ‘늘봄채’에서 거주 중인 장덕기씨 모습. 보건복지부 제공
늘봄채가 만들어낸 변화는 극적이다. 미국에서 지내다 3년 전 귀국해 이곳에 입주한 장덕기씨는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미국에선 누워만 지냈는데 이곳에 온 지 반년 만에 지팡이를 짚고 걷게 됐다”며 “더 바랄 데 없는 지상낙원”이라며 웃었다.
‘13% 자립도’ 대덕구의 고군분투, 지원 없인 ‘신기루’ 우려
대덕구의 변화는 넉넉한 곳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덕구의 재정자립도는 13%에 불과하고, 예산의 64%가 복지비로 쓰인다. 공무원들이 LH를 찾아다니며 빈 상가와 건물을 무상으로 빌려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돌봄건강학교와 늘봄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올해 통합돌봄 예산은 14억65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3억4000만원 삭감됐다. 정부가 전국 시행을 내세워 통합돌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재정 지원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대덕구 사례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있다. 대덕구는 2023년부터 통합돌범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인프라와 노하우를 쌓아온 선도 지역이다. 지자체별 경험과 인력, 예산 여건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인프라가 전무한 지방 소도시까지 이 같은 그물망이 확산하기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지난 7일 옥지영 대덕구청 통합돌봄팀장이 대덕구 통합돌봄 지원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옥지영 대덕구청 통합돌봄팀장은 “지역이 가진 자원을 엮어내는 게 통합돌봄의 핵심이지만, 지자체의 의지와 발품만으로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내년에도 안정적 예산 지원이 이어질 수 있을지, 공들여 쌓은 돌봄망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불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