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오늘과 같은 문명을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직립보행의 진화에 있다. 이를 통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와 불을 다루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처럼 보행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궁극적인 활동이다.
도시의 숨결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어느 평일 오후, 봄기운이 스며든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걷는 일은 그 자체가 고행(苦行)이고, 스트레스다.
걷기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보도(步道)를 침범하는 자동차의 존재다. 보도로 주행하는 오토바이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하면서도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건물 앞 사유지나 보도에 걸쳐 주차된 자동차다. 이러한 차량은 보행자의 이동을 방해할 뿐 아니라, 주차를 위해 보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보행자를 위협한다. 또한 반복되는 차량 통행은 하중으로 인해 보도의 침하와 보도블록 파손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도로교통법’이 자동차가 도로가 아닌 곳으로 출입할 경우 보도를 통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도는 본래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규정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입법적으로는 자동차의 보도 통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보도를 통하지 않으면 진입할 수 없는 건물 앞 사유지에 대한 주차 역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두 발로, 또는 지팡이나 휠체어 같은 보장구를 이용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보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평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도는 대부분 도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른바 ‘횡단경사’로, 노면 배수를 위한 구조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경사가 보행자와 휠체어 이용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횡단경사가 클수록 한쪽으로 쏠리는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보행자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황에 따라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질 위험도 커진다. 비가 오거나 결빙된 경우에는 미끄럼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특히 걸음이 불편한 노약자와 장애인에게는 더욱 위험한 환경이다.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해야 할 보도가 오히려 그 목적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횡단경사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행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요소는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는 운전자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동차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위해 정지해야 하며, 그 통행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보행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위해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차량을 찾기는 쉽지 않다. 횡단보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자동차와 마주하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 나면, 차라리 육교나 지하도로 건너는 편이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운전자 역시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되지만, 규범 위반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당장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민의식 결여를 운운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 많은 경찰(단속), 더 많은 범칙금(처벌)’이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서글프지만 냉혹한 현실이다.
시민의 편의를 위한 정책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이것이 선출직 공무원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보행 환경의 개선이 그 대상이 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당장 큰 불편을 느끼거나 그 필요성을 절실히 체감하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외형적 성장에 집중해온 우리 사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에 대한 고려에 인색했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답고 행복한 삶이라면, 이를 위한 가장 기초적 조건인 보행 환경의 정비와 개선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과제다.
최종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