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페이커가 롤드컵 3연패를 완성했다. 페이커와 롤드컵이 낯선 독자도 있을 것이다. 페이커는 프로게이머 이상혁이다. 롤드컵은 게임 ‘리그 오브 레전즈’의 세계 챔피언십, 일종의 월드컵 결승전이다.
‘게임 따위’라고 여길 독자를 위해 덧붙인다. 지난 10년간 한국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영화의 약 150배에 달한다. 전체 콘텐츠 산업의 60~70%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다. 게임은 현대 문화의 첨병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관리와 육성이다. 그래야 미래를 말할 수 있다.
롤드컵은 음악 종사자에게도 중요하다. 유명 음악가가 주제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전자음악 뮤지션 제드를 비롯해 힙합 가수 릴 나스 엑스, 록그룹 린킨 파크, 한국의 뉴진스 등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밴드 이매진 드래건스가 발표한 ‘워리어스’도 있다. 게임 음악으로 쓰인 덕에 어린 세대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스트리밍 시대, 영화와 영상 콘텐츠가 대중예술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음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음악은 가장 보편적인 예술인 만큼, 앞선 사례처럼 다양한 미디어와 결합할 수 있는 독자성을 지닌다.
그 결과 2025년 세계 음악 시장은 7.7% 성장했다. 스트리밍의 꾸준한 상승과 공연 시장의 확장 덕분이다. 이 같은 우상향 흐름은 단발적 현상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추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상위 10%가 스트리밍 수익의 99%를 가져가고, 상위 1%만 따로 보면 90%를 차지한다.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 구조다.
최근 인디신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벨로주 홍대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경영난 때문은 아니다. 대표는 “때가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라이브를 봤고, 여러 훌륭한 뮤지션을 알게 됐다. 벨로주는 주먹구구식 운영에 머물지 않고, 음악가에 대한 정당한 예우를 실천한 곳이었다. “클럽 공연이 끝나면 협의도 없이 돈을 받는 일이 흔했지만, 벨로주에서는 정산 자료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한 현직 음악가의 증언이다. 최적의 사운드 환경과 전문적인 운영 시스템까지. 벨로주가 인디신에 이바지한 바는 결코 작지 않다.
몇년 전부터 대형 전문 공연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K팝과 해외 스타를 수용할 ‘그릇’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벨로주와 같은, 체계를 갖춘 중소 공연장이다. 대한민국은 독특한 구조를 지닌 나라다. 스포츠만 보더라도 저변을 두껍게 다지기보다 몇몇 천재에 의존해 명맥을 유지해온 측면이 있다. 문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늘 주목받는 것은 소수의 거대 자본과 스타뿐이다. 분명히 해야 한다. 문화에는 이른바 ‘낙수효과’ 따위는 작동하지 않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가 퇴장한 뒤 우리는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K팝이 서서히 저물어갈 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천만 영화 몇편으로 산업의 토양이 단단해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말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한때 게임에 대한 인식은 거의 질병에 가까웠다. 다행히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문화의 한 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낯설지만 반갑다.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지 않는다면 음악 생태계의 성장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배순탁 음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