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세상 일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돌아간다지만, 집 밖을 나서는 발걸음까지 막기에는 날이 너무 좋다.
그러다보니 길목마다 차량이 가득하다. 드나드는 구간마다 차들은 각각의 박자로 내 앞에 들어오기도 하고, 내게 앞길을 내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 순간마다 깜빡이를 반짝이며 상대에게 신호를 한다. 이제는 내가 들어갈 차례라고, 혹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경쾌하게 노란빛을 발산한다. 그렇게 한발 들이대 볼 수 있는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우리는 뒤에서 오는 차의 속도를 감지하고, 빈틈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의 속도를 예측한다. 우리는 그 도로의 리듬을 따르며 움직인다. 홀로 다른 박자를 타면, 사고가 나거나 크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치밀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면서,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시장의 요구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얼리어댑터들이 입 모아 말하던 시절이 불과 2년 전이다. 초기에는 기대보다 다소 부족한 AI의 성능에 되레 실망감을 표하던 이들도, 금세 퍽 높아진 성능을 보고 나면 그 ‘발전 속도’에 크게 놀란다. “내가 쓸모 있게 쓰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라는 자조가 곳곳에서 들린다.
일터와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양만큼 일을 하고, 속도를 내고, 시간을 들이던 그 박자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일이 너무 많으면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하거나, 목표 달성 기간을 늘리는 식의 사람 간 협의를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론이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사람끼리 서로 목표치를 정하고, 그 안에서 합당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거버넌스라는 이름 아래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는 것이 점점 당연해지기 시작하던 찰나였다.
사람들끼리 만들어가던 그 질서에, AI 기술은 상당한 크기의 균열을 내고 있다. 이 기술은 우리의 역량을 증강하는 것이냐, 혹은 우리의 쓸모를 대체하는 것이냐를 논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기술은 저 멀리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논의를 하고, 궁리를 하고, 합의를 이루어 가는 그 속도보다 훨씬 빠른 변화값을 보인다. AI 기술은, 말하자면 아예 다른 박자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AI 개발을 잠시 중지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정지 사인을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박자에 끼어들어야 할까. 기술 혁신이라 불리는 이 격렬한 리듬 안에, 누구나 다치지 않고 잘 합류할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지금은 이토록 가파른 속도에도, 나에게 어떤 안전과 보호가 보장될 수 있고, 어떤 효용이 나에게 와닿을 수 있을지를 차근차근 설명받는 기회가 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회 안에서 서로에 대한 친절함이 간절한 시점인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우리의 일상을 위해, 변화 속도보다 더 앞선 상상력을 함께 내어보고, 서로를 더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이 리듬을 주도할 수 있다.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