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이상은 ‘보호관찰’ ‘단기 소년원 송치’
현행 제도서도 죗값 치르지 않는 것 아냐
“청소년 범죄 원인에 더 주목해야” 입 모아
박준혁군(17·왼쪽부터), 윤건우군(17), 이준원군(15)과 도연양(뒷모습·가명·16)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탁틴내일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정부가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연령 하향 검토를 지시하면서 논의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처벌 강화보다 예방과 보호, 사회적 지원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5일 경향신문이 서울 종로구 청소년성폭력예방기관 ‘탁틴내일’ 회의실에서 만난 박준혁(17)·윤건우(17)·이준원(15)군과 도연양(16·가명)은 “청소년이 처한 어려움과 취약한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연령 하향만을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이들은 정부가 여론 등을 근거로 연령 하향 논의를 본격화한 것에 대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군은 청소년 범죄를 다룬 드라마 영상, 웹툰을 통해 처음 이 문제를 접한 뒤 ‘연령 하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권에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된 뒤엔 생각을 바꿨다. 이군은 “촉법소년 연령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콘텐츠의 영향으로 여론이 나빠진 것 같다”며 “단순히 연령을 낮춘다고 없어질 문제는 아닌데, 일차원적 논의가 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실제 죄를 저지른 형사미성년자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법 제도만으로도 10세 이상은 ‘보호관찰’ ‘단기 소년원 송치’ 등이 적용될 수 있다. 12세 이상은 최대 2년까지 장기 소년원 송치도 가능하다. 윤건우군은 “만 14세 미만 청소년이 겪는 2년은 특히 더 긴 시간”이라며 “촉법소년이라는 용어 자체가 죄를 지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오해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년사법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청소년이 있을 수 있지만, 연령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박준혁군은 “연령을 낮춘다고 해도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똑같이 벌어질 수 있고, 이런 방식이라면 촉법소년 연령이 계속 낮아지게 될 것”이라며 “이 논의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방향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세이브더칠드런, 아동인권포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등 아동인권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처벌강화가 아니라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예방과 회복을 지원하라-촉법소년 연령 하향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들은 무엇보다 청소년을 범죄에 빠지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연양은 최근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청소년은 일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도연양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드물다”며 “생존을 위해 범죄에 이용되는 청소년도 있을 수 있다.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군은 이번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에 대해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공인뿐 아니라 선택권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막중한 책임을 지우려 하는 ‘차가운 사회’가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범죄를 저질러도 죄를 뉘우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바라는지,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디면 겁주고 처벌해서 다시는 사회로 돌아올 수 없는 사회를 바라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군은 “‘비행’이 시작되는 시기에 사소한 잘못을 시작할 때부터 학교·가족·마을에서 이 잘못이 왜 문제인지 이야기해주고, 청소년이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익법단체 두루, 탁틴내일, 다산인권센터 등은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들의 의견을 담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려는 본래 제도 취지와 달리, 보호를 위한 인적·물적 지원이 충분한지에 대한 검토는 생략되고 촉법소년의 범죄만 부각되고 있다”며 “사회가 어떻게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지원해 긍정적 성장과 발달을 지원할지 논의하는 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