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아.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고흐가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뒤 테오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7세(1880년) 무렵이었고, 이 편지는 29세였던 1882년 10월경에 쓰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반 고흐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폭풍우 속의 스헤베닝겐 해변’이나 ‘헤이그의 오래된 집들과 신교회’가 대표적이다. 스승 모베를 만나 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져가던 시기로, 결코 어설픔이 느껴지지 않으며 고흐가 추구한 예술의 진정성이 처음부터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금, 마치 그 시기의 고흐처럼 어떻게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자신의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궁금해하는 젊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양평군립미술관이 전국 미술대학과 함께 선정한 ‘59명의 유망 작가’ 그룹전 ‘무엇이 보이는가’다. 무엇보다 제도권의 매끈한 문법에 길들여지기 전, 오직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려는 그 ‘초록초록한 진지함’이 좋았던 전시다.
내게는 웬만한 기성작가 전시보다 더 흥미진진했고 새내기들의 작품 수준이나 완성도가 기대 이상으로 높아 적잖이 놀랐다. 존 버거가 회화의 고전적인 가치에 대해 “그림은 금전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서 얼마나 바람직하고 탐나는 물건인가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한다”고 썼는데 내 돈을 주고 기꺼이 사고 싶은 시각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제법 많았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어쩌면 평론가들이 지금 당장 ‘유망’하다고 평가해주는 것보다, 랠프 월도 에머슨이 말한 ‘자기 신뢰’의 정신을 기본값으로 장착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처럼 말이다.
호퍼는 어릴 때부터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아내 조세핀이 “호퍼의 유일한 종교는 에머슨”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호퍼의 코트 주머니에는 늘 에머슨의 에세이가 들어 있었는데 <자기 신뢰> 책의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호퍼가 어떻게 현대 도시의 군중 속에서도 ‘고독의 힘’을 유지하고 뚝심 있는 예술가로 무르익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재능이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존재에 증명은 필요 없다/ 누구나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서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기둥이 되어라/ 자신에게 정직하라/ 나를 괴롭히는 힘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대 자신으로 살아라/ 그대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이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 역시 에머슨을 사랑한다. 모두들 데이미언 허스트의 눈부시게 화려한 해골 전시를 보러 갈 때, 나는 에머슨 책을 들고 양평군립미술관으로 향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는 책에서 나는 그날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세상의 비밀은 사람과 사건이 맺는 관계에 있다. 사람은 사건을 만들고 사건은 사람을 만든다.”
에머슨을 만나는 건 누구에게나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수 있다. 그 책을 들고 양평에 가서 이 전시를 보는 것도 사건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보이는가’ 전시는 5월10일까지 양평군립미술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