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시선을 통해 현대 사회가 맹신하는 ‘능력’의 실체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작품 속 아이들은 상류 계급에 진입하기 위해 지능을 유전적으로 조작하는 ‘향상(Lifted)’ 시술을 받는다. 주인공 조시는 이 위험한 선택의 대가로 언니 샐을 잃고, 자신 또한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다. 반면 ‘향상’을 선택하지 않은 친구 릭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향상되지 않았다(Unlifted)’는 이유만으로 주류 사회 진입 장벽 앞에서 좌절한다.
심지어 조시의 어머니는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인공지능 클라라에게 조시를 학습시켜 그녀를 완전히 대체하려는 섬뜩한 계획까지 세운다. 소설이 그려내는 성공 신화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잔혹함이며, 인간을 등급 매기는 능력주의가 초래할 파국을 예고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실의 철학적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긴다고 경고한다.
김누리 교수 또한 한국의 경쟁 교육을 “야만”이라 비판하며, 교육이 자아실현이 아닌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생존 기술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두 사상가의 지적처럼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인간을 끝없는 비교와 소외 속에 가둔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유전자 기술의 발전은 소설 속 ‘향상’을 현실로 끌어오며, 인종적·생물학적 계급화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소설 속 클라라는 오직 헌신과 믿음으로 ‘태양’의 자비를 구하며 조시를 살리고자 한다. 인간을 구하는 힘은 유전자 조작이나 높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바로 ‘태양’과 같은 따뜻한 덕목에 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공감, 각자도생의 벽을 허무는 연대와 사랑, 그리고 정직, 근면, 성실과 같은 삶의 기본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유교의 핵심인 맹자의 사단(四端)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고, 초경쟁 사회가 인간성을 잠식하는 오늘날, 사단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인간성을 지키는 실질적 역량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첫째, 측은지심(惻隱之心)은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공감 능력이다. 성적과 자산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실패를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공감의 결핍, 곧 정서적 무능을 보여준다. 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아픔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서 시작된다.
둘째,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거부하는 마음이다. 이는 내가 누리는 혜택이 타인의 기회를 침해한 결과는 아닌지 성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능력은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기준이다.
셋째, 사양지심(辭讓之心)은 경쟁의 첨예함을 흡수하는 완충의 덕목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양보는 패배로 간주되지만, 모두가 앞서려 할수록 사회적 갈등의 해결 비용은 커진다. 사양지심은 나만 ‘향상’되어 살아남겠다는 독점적 욕망을 내려놓고,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며 자리를 나누는 ‘사회적 여유’를 뜻한다. 공존의 능력이야말로 극단적 갈등을 치유하는 핵심이다.
넷째,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윤리적 판단력이다. 효율과 성과가 절대 기준이 된 시대일수록, 기술적 합리성보다 도덕적 정당성을 먼저 묻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작가 산도르 마라이는 인간에게는 지능을 넘어서는 ‘이해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논리적 계산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고통을 통찰하는 힘이다. 결국 진정한 능력이란 나를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마음이다. 태양이 만물을 고르게 비추듯,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회복해 서로의 태양이 되는 연대가 이 어지러운 시대에 가장 절실하다.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