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를 꼬리에 단 겨울이 계절의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겨울은 무를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무가 없었더라면 저 매서운 혹한을 어찌 건너왔을꼬. 내 고향에서는 무를 ‘무시’라 했다. ‘무수’라고 한 동네도 있단다. 철들도록 무우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표준말은 무라며 허벅지만 한 게 미끈하게 나에게 왔다. 그렇다고 무우를 꼬박꼬박 무라고 대접하진 않았다. 장미를 다른 말로 부른다고 장미의 향이 없어지지 않듯 무를 무우, 무수, 무시라 한다고 그 상냥한 맛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외려 정말 맛있는 무를 만나면 무시라고 해야 그 맛이 그 말에 꽉 감긴다.
겨울밤 출출할 때 그냥 깎아 먹어도 과일에 하나 꿇리지 않는 무. 물론 소고기뭇국도 장려할 만하겠으나 아무래도 깍두기가 제격이다. 어느 식당이건 무턱대고 가도 깍두기 하나 없기는 드물다. 깍두기와 쌀밥만 훌륭해도 그 집은 단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얼마 전 봄꽃 보러 경주에 갔을 때, 아침에 널리 이름난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손님들의 그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식당에는 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돼지기름이야 다소 번들거려도 정갈한 식탁마다 맛의 아우라가 흥건히 고여 있는 식당. 수저통에서 사이좋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기는 사이, 깍두기를 비롯한 밑반찬을 먼저 깔아 주신다.
멀리 뉴욕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첫돌 지난 손녀. 그 그리운 이름을 젓가락으로 물컵에 적어본다. 방금 내 사랑이 녹아든 물은 조금 다른 맛일까. 아, 물맛과 무맛은 서로 맞물리는 무미의 맛! 한 모금 하는 사이, 텔레비전에서 요란한 뉴스가 귀에 쟁쟁거린다. 온통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통속으로 일으킨 전쟁과 한창 급박하게 요동치는 주식 열풍 소식들.
음식이야 주문한 대로 나온다. 뚝배기의 바닥을 비운 뒤 문을 나서면 또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옛날 시골에서 제사 지낼 때, 어머니는 두 가지 전을 만드셨지. 그땐 달달한 고구마전이었지만 이젠 밍밍한 무전이 더 좋다.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가락! 연거푸 더 뜨니 왜 이 집인 줄을 알겠다. 직육면체의 이 깍두기는 나를 그 어디로 데려가는 운명의 주사위 같군. 또 한 접시의 무를 찾아 성스러운 주방 앞으로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