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결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오만과 권력의 과시욕이 빚어내는 파멸의 궤적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과 202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전쟁은 23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제국의 황혼’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해가고 있다. 2003년이 ‘네오콘’이라 불리는 미 보수 정파의 지적 파산을 알린 서막이었다면, 2026년은 미국이 지탱해온 국제적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가 완전히 소멸한 종말의 현장이다.
2003년 이라크에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20조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5000여명의 미군 전사자, 그리고 수십만명의 민간인 희생을 남겼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의 파산’이었다. 2026년 이란 전쟁은 다시 그 문턱에 서 있다. 6주간의 교전 후 도출된 ‘일시적 휴전’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상처만을 남겼다. 이제부터 펼쳐질 장기 소모전의 늪, 에너지 공급망의 처참한 교란,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이 짊어져야 할 정치적·전략적·도덕적 파탄은 23년 전 이라크의 비극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두 전쟁을 관통하는 가장 섬뜩한 공통점은 지도자의 독단과 군사에 관한 전문성이 결여된 문민 장관의 오만이다. 2003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를 점령하려면 30만 병력이 필요하다고 직언한 에릭 신세키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현대전을 모르는 소치”라며 조롱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럼즈펠드는 기술적 우위와 정밀 타격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군사 혁신(RMA)’의 환상에 빠져 전문가의 경고를 묵살했고, 결국 임기를 14일 남겨놓은 신세키를 사실상 해임하며 군의 입을 막았다.
2026년, 피트 헤그세스 전쟁장관은 럼즈펠드의 그 위험한 길을 더욱 노골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그는 이란의 비대칭 전력과 지정학적 복잡성을 경고하며 신중론을 펼친 댄 케인 합참의장의 조언을 무시했고,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을 전격 해임했다. 럼즈펠드가 최소한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내세웠다면, 헤그세스는 ‘충성심’과 ‘이념적 순결성’이라는 잣대로 군의 수뇌부를 숙청했다. 전문가를 배제하고 군을 정치화하는 이른바 ‘주관적 문민통제’의 극치다.
이번 전쟁이 2003년보다 더욱 악성인 이유는 전쟁을 대하는 권력의 ‘최소한의 성의’조차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부시 행정부는 침공 전 수개월 동안 대량살상무기(WMD)라는 가짜정보를 유포하고 여론을 조성하며, 나름의 ‘명분 찾기’에 골몰했다. 그러나 2026년 이란 전쟁은 어떠한 사전 여론 수렴이나 국가적 숙의도 없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심층 보도한 지난 2월 말의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무장관과 합참의장이 반대한 전쟁은 트럼프에 의해 즉흥적으로 결정됐고, 관료적 기구가 아니라 트럼프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침에 전 세계로 던져졌다. 이는 여론 조성조차 생략된 ‘날벼락 같은 기습’이었으며, 근대 국가의 전쟁 수행 규범을 완전히 무시한 야만적 도발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국제인도법(IHL)과 교전규칙(ROE)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전쟁에도 최소한의 금도가 있다. 적군과 민간인을 엄격히 분리하는 ‘구별의 원칙’, 군사적 목표와 수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비례성의 원칙’은 문명 세계가 전쟁의 참혹함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보루를 제 손으로 무너뜨렸다. 이란의 전력망, 상수도, 댐, 교량 등 민간 생존 인프라와 비전투 기능을 정밀 타격의 우선순위에 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적 요소다.
군사적 필요를 넘어선 민간 시설 파괴는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는 전략이 아니라, 한 국가의 삶의 토대를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문명 파괴적 본능’의 발현이다. 23년 전 럼즈펠드가 군사 효율성을 위해 군의 조언을 묵살했다면, 오늘날 헤그세스는 대통령의 분노를 집행하기 위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전쟁 규범을 폐기했다.
전장의 양상 또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은 2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하며 전쟁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10만이 넘는 이라크 정규군은 궤멸된 것이 아니라 민간으로 숨어들었고, 훗날 처절한 저항군으로 돌변해 미군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갔다.
6주가 지난 이란 전쟁에서 이란 체제의 중추인 혁명수비대(IRGC)는 여전히 건재하다. 신정 지도부는 오히려 ‘순교자적 저항’의 명분만 강화했다. 그 폐해는 세계 공급망의 근원까지 타격하고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