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 양병찬 옮김
문학동네 | 648쪽 | 4만3000원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인가. 세계적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민감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에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파격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과 판단은 수많은 선행 요인이 빚어낸 결과에 가깝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이 쌓여 ‘나’라는 인생을 만든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1초 전의 신경 신호, 몇시간 전의 호르몬 상태, 유년기의 환경과 태아기의 조건, 수천년에 걸친 유전적 영향이 켜켜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내는 동시에 카오스 이론과 양자역학 같은 현대 물리학을 근거로 자유의지를 옹호하려는 시도들을 차례로 격파한다. 겉으론 혼돈처럼 보이는 세계 역시 복잡한 물리법칙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 또한 그 거대한 인과관계의 흐름 안에 있다.
이 도발적 논의는 ‘책임’과 ‘윤리’라는 화두로도 이어진다. 만약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성취를 찬양하는 시선이나 범죄를 개인의 악의로 단정하는 태도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성공은 좋은 조건이 맞물린 결과일 수 있고, 실패와 범죄도 개인이 통제할 수 없었던 환경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복수심에 기댄 처벌 대신 사회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격리와 재활에 집중하는 미래지향적 사법 모델을 제안한다. 과거 뇌전증 환자를 악령 들린 자로 처벌하던 관습이 생물학적 이해를 통해 사라졌듯, 인간 존재에 대한 과학적 통찰이 깊어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포용과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봤자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고 단언하는 저자의 차가운 논리는 언뜻 인간성을 배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나의 성취에는 겸손을, 타인의 고통에는 연민을 품게 만드는, 과학의 이름으로 쓴 뜨거운 인류애의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