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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문을 꼭 걸어 잠그는 것이 영리한 것이 되어가는 시대,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표제작 '달걀의 온기'에서 주인공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살던 고향집을 처분하러 시골에 내려왔다.

두 오빠 때문에 자신은 늘 집에서 뒷전이었다고 생각하는 선희는 마흔이 되도록 자신이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사기나 당한 것이 결국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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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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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면서도 타인에게 손 내밀 용기, 또는 온기

입력 2026.04.09 20:21

수정 2026.04.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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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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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창비 | 256쪽 | 1만7000원

소설가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속 인물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창비 제공

소설가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속 인물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창비 제공

자신의 안위 위해 문 걸어 잠그는 대신
다른 방향 향하는 사람들 이야기
개인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옳은지 질문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라고들 한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문을 꼭 걸어 잠그는 것이 영리한 것이 되어가는 시대,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소설집에서 인물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결말을 맞지는 못하더라도. 제 문을 열어 손을 내미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소설집을 읽어 내려간다.

표제작 ‘달걀의 온기’에서 주인공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살던 고향집을 처분하러 시골에 내려왔다. 두 오빠 때문에 자신은 늘 집에서 뒷전이었다고 생각하는 선희는 마흔이 되도록 자신이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사기나 당한 것이 결국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시골집은 잘 팔리지 않고 오빠들과도 갈등하는 사이 소녀 민지를 만난다. 부모에게 버려지고 할머니 손에 자란다는 아이는 기르는 닭이 낳은 청란을 팔아 살아간다. 이상한 것은 평소 달걀을 먹지 않는 아버지도, 달걀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옆집 할머니도 민지의 청란을 주기적으로 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번의 만남 후에 선희도 민지의 청란을 받아든다. “선희는 아이가 건넨 청란 두 알을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그건 바깥의 열기와는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였다. 아니, 바깥에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온기인지도 몰랐다. …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이 마주했던 원망과 미움이 조금씩 사라짐을 느낀다. 세상에 어떤 선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 선의가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2024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청란’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던 단편이 제목을 바꿔 이번 소설집에 실리며 표제작이 됐다. 소설은 인물의 내면을 깊이 탐구한다거나 갑작스러운 사건을 통해 독자를 놀래지도 않는다. 딱 갓 낳은 달걀, 그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설집의 첫 문을 여는 ‘관종들’에 등장하는 부부 정해와 영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이의 삶에 개입한다. 정해는 겨울 아파트 단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몇번의 마주침 끝에 정해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다시 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을 보곤 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정해는 아이들을 향해 자신이 느끼는 ‘불안’의 감정을 인지하며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을 지켜볼 것을 결심한다.

‘관종들’은 명쾌한 소설은 아니다. 아이들이 정말 학대를 당했는지, 사실과 증거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의거한 정해의 의심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정말 옳은지 묻는다. 올해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박혜진 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요즘 사회는 많이 개인화되어 있다고 느낀다”며 “개인의 경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정말 다양해졌고, 그런 점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소외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루치의 말’은 그런 소외의 상태를 보여준다. 어머니의 이불가게를 물려받게 된 애실이 손님 현서와 가까워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애실은 친근하게 대해주는 현서를 통해 자신 안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현서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결말을 맞으면서다. 애실의 이야기는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관심을 갈구하며 거짓된 애정이라도 믿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소설가 김혜진은 2012년 등단해 장편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오직 그녀의 것>과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등을 내며 쉬지 않고 작업했다. 대산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비롯해 다수 문학상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번 소설집에 실린 7편의 작품 중 ‘푸른색 루비콘’은 2023년 김유정문학상 대상, ‘빈티지 엽서’는 2025년 김승옥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꾸준히 작업하며 문학계의 부름을 받는 작가의 글들을 통해 지금 한국 문학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겠다.

[책과 삶]주저하면서도 타인에게 손 내밀 용기, 또는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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