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한 달 ‘사용자성’ 판단
개정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하청노동자에게도 ‘진짜 사장’과 마주할 교섭권이 생긴 것이지만, 노사가 협상장에서 마주 앉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사의 입장차가 극명한 제도인 만큼 안착 과정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노란봉투법 시행일인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7일까지 노동위원회에 총 278건의 사용자성 판단 신청이 접수됐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판단이 내려진 15건 중 13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이날 기각됐다.
앞서 첫 원청 사용자성 판단은 하청노동자들이 공공부문인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을 상대로 낸 사건에서 나왔다. 충남지방노동위는 지난 2일 “공공기관이 ‘안전관리 및 인력배치’에서 실질적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인덕대·성공회대 등 사립대 청소노동자들이 대학들을 상대로 낸 사건에서 사용자성 인정 판단이 내려졌다.
한동대, 하청 청소 노동자들과 상견례…‘자발적 교섭’ 첫 사례
8일엔 국세청 홈택스 콜센터 사건에서 ‘감정노동자 보호 및 작업환경 개선’ 의제에 한해 국세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다만 직접고용, 임금·복지 등 다른 의제는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판단을 보류했다. 포스코는 산업안전과 관련해 사용자성이 인정됨과 동시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하청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까지 인정된 첫 사업장이 됐다.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이 시작된 곳도 나왔다. 한동대는 이날 청소노동자로 구성된 하청노조와 상견례를 하고 교섭 절차에 들어갔다. 이날 교섭은 법 시행 이후 원청이 노동위의 사용자성 판단 없이 자발적으로 교섭에 응한 첫 사례이다.
노동계는 하청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길이 열린 점을 긍정 평가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하나의 교섭 의제만으로도 사용자성을 인정해 교섭을 개시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반면 재계는 법 시행 이후 현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 사용자는 7일간 공고해야 하는데, 상당수 원청이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를 무시하며 공고하지 않고 있다. 지방노동위에서 시정 신청 등에 대한 판단이 나오더라도 중앙노동위 재심, 행정소송 등 절차로 나아갈 수 있어 노사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노동위의 판단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작업환경 등 일부 의제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방식은 법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며 “(직접고용 등에 관해) 판단이 어렵다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명확히 불인정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박 교수는 “20일 내 결론을 내는 속도전보다 충분한 심리를 거치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시행 초기 교섭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현장의 혼란으로 오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법적 절차를 통해 교섭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