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중·일본제철 찾아 항의
숨진 피해자 유가족 2명도 참석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와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9일 일본제철 본사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이대로는 못 죽겠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는 하루빨리 사죄하십시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96)가 9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본사를 직접 찾아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되었다가 숨진 피해자의 유가족 2명도 함께했다.
정 할머니 일행과 일본 시민단체는 이날 전범 기업을 찾아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는 ‘마루노우치 행동’ 집회에 참석했다. 양심있는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부터 도쿄 마루노우치 인근에 있는 일본제철 앞에서 이 집회를 매월 이어오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탄 정 할머니와 일본 시민단체는 이날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본사를 잇달아 항의 방문했다. 정 할머니가 자신이 강제동원됐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다.
정 할머니는 1944년 5월 전남 나주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일본에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중학교도 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 공장에 강제동원됐다. 배고픔과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정 할머니는 그해 12월 도난카이 대지진도 겪었다. 지진으로 함께 강제동원됐던 친구 6명이 숨지기도 했다.
광복 이후 강제동원 사실을 가슴속에 묻어뒀던 정 할머니는 2020년 죽기 전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일본의 후생연금 기록을 확인하려 하자 일본 정부는 2022년 ‘탈퇴 수당’이라며 통장에 931원(99엔)을 입금하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2024년 1심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항소로 현재 광주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 할머니는 이날 오후 일본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사죄를 촉구하는 편지 형식의 입장문도 공개했다. 정 할머니는 “낮에는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지팡이가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다”면서 “남들은 ‘무슨 일본에 가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죽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돈이 탐나서가 아니라 죄인처럼 평생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이대로는 못 죽겠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는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