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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니까 참고 신던 너, 더 편한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입력 2026.04.11 12:00

  •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19) 발레리나 슈즈

[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예쁘니까 참고 신던 너, 더 편한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발등 감싸는 디자인으로 안정감
레더·새틴 등 소재 다양해져
팬츠와 코디 시 ‘세련미’

봄이 오면 겨우내 의지했던 묵직한 부츠와 두툼한 밑창의 운동화가 조금씩 답답하게 느껴진다. 좀 더 가벼운 신발을 찾는 요즘, 그렇다고 밀려난 힐의 자리가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이제는 편안한 운동화가 데일리 슈즈가 된 이상, 목적 없이 힐을 신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운동화의 편안함 뒤에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섬세한 발등의 라인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발등을 드러낼 때의 청량감, 그리고 발목으로 이어지는 섬세한 라인은 운동화에서는 구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아쉬움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신발이 바로 발레리나 슈즈다.

국내에서는 흔히 ‘발레리나’ 혹은 ‘발레리나 플랫’이라 부르고, 해외에서는 ‘발레 플랫’ 또는 ‘발레 슈즈’로 통한다.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분위기는 같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힐 없이도 충분히 우아한 신발이라는 점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편해서만은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세련됐고, 오히려 지금 시대의 감각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 도시 생활의 속도, 많이 걷는 생활 방식, 그리고 옷차림 전반이 힘을 빼고 정제되는 흐름 속에서 발레리나 슈즈는 아주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올라왔다.

발레리나 슈즈가 낯선 유행인 것도 아니다. 발레리나 슈즈는 오래된 클래식이지만, 2026년의 귀환은 예전과 결이 다르다. 이번에는 단순히 귀엽고 여성스러운 신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소재와 구조, 그리고 더 현실적인 착화감으로 돌아왔다.

올봄 발레리나 슈즈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발등의 면적이다. 예전의 발레리나는 발등을 얕게 드러내고 리본 장식을 강조한 단정한 플랫에 가까웠다. 반면 올해는 발등을 넓게 감싸는 하이 뱀프(high vamp)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신발이 발 위에 살짝 얹히는 느낌이 아니라, 감싸안는 느낌에 가깝다. 발레리나의 여린 인상 위에 로퍼 같은 실용성이 겹쳐지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패션 매체에서도 2026년 봄의 주요 흐름으로 이 같은 ‘발등을 넓게 덮는 풀 커버 실루엣’을 꼽고 있다.

둘째는 소재의 변화다. 올해 발레리나 슈즈는 반질반질한 기본 가죽 한 종류로 설명되지 않는다. 양가죽처럼 부드럽게 주름이 잡히는 레더, 발레 토슈즈를 연상시키는 새틴, 계절감을 살려주는 스웨이드, 그리고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메시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 소재 변화 덕분에 발레리나는 이제 ‘얌전한 검정 플랫’에 머무르지 않는다. 옷차림에 따라 한없이 로맨틱해질 수도 있고, 놀랄 만큼 미니멀해질 수도 있다.

셋째는 스트랩의 존재감이다. 발등 위로 한 줄, 혹은 두 줄이 지나가는 메리제인형 발레리나는 이제 거의 독립된 장르처럼 자리 잡았다. 클래식한 발레리나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들에게 스트랩은 좋은 해답이 된다. 장식성이 있으면서도 발을 고정해 실제로 걷기 편하고, 무엇보다 팬츠와 입었을 때도 신발의 존재감이 또렷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발레리나와 운동화의 결합이다. 올봄에는 밑창의 쿠셔닝과 실용성은 운동화에서 가져오고, 실루엣과 분위기는 발레리나에서 빌려온 하이브리드 슈즈가 눈에 띈다. 밑창은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갑피는 얇고 가볍고 여성스럽다. 운동화가 너무 무겁고, 전통적인 발레리나가 다소 납작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는 이 중간 지점이 매우 현실적이다.

스타일링도 어렵지 않다. 발레리나 슈즈는 원피스보다 오히려 팬츠와 만났을 때 더 요즘답다. 청바지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검정 혹은 붉은색 발레리나는 지나치게 꾸민 느낌 없이도 충분히 세련돼 보인다. 와이드 팬츠에는 앞코가 조금 길거나 발등을 넓게 덮는 타입이 잘 어울리고, 크롭트 팬츠에는 메리제인형이 경쾌하다. 스웨이드 소재는 베이지와 네이비 계열의 정장 팬츠와도 잘 맞고, 메시나 새틴은 봄의 가벼운 스커트와도 조화롭다.

무엇보다 이 신발이 반가운 이유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에게는 발레 코어의 연장선일 수 있고, 40대 이후에는 과장되지 않은 여성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안이 된다. 지나치게 소녀적이지 않으면서도 발끝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운동화보다 덜 캐주얼하면서도 힐보다 덜 부담스럽다.

결국 2026년 봄의 발레리나 슈즈는 ‘예뻐 보이기 위해 참는 신발’이 아니다. 많이 걷고 오래 서 있으며 일정이 빽빽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우아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신발이다.

▶박민지

[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예쁘니까 참고 신던 너, 더 편한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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