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이란과의 협상을 위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 신화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최고위급 인사가 47년 만에 마주 앉아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돌파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미국 측 협상단을 이끈 J D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핵 개발 의사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회담 결렬을 선언한 후 미국으로 복귀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과도하고 불법적인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회담에 돌입한 미국과 이란 협상 대표단은 다음날 새벽 4시 넘어서까지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 대면 협상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양국 간 관계가 단절된 이후 47년 만의 최고위급 회담이며, 이란 핵 프로그램 합의가 이뤄진 2015년 이후 첫 직접 회담이다.
밴스 부통령은 12일 오전 6시30분쯤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대통령의 레드라인은 이란으로부터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는 것인데, 이란은 이 조건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지금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핵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이란의 의지를 우리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밴스 부통령은 “(앞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우리의 최선이자 최종 제안을 이란이 받아들일지 지켜보겠다”고 말해 협상 채널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밴스 부통령이 협상 도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10여차례 통화했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 회담 결렬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란 대표단. 신화연합뉴스
반면 이란 측은 미국의 “터무니 없는 요구”로 회담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는 “협상 성공은 상대편(미국)의 신의성실에 달렸다”며 “과도한 요구와 불법적 요구를 자제”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미국은 이날 회담에서 핵 포기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의 ‘공동 관리’를 요구했지만 이란이 거부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미군은 이날 기뢰 제거를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 미 구축함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IRGC)는 협상 진행 도중 성명을 내고 “해협을 통과하려는 군함은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대표단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파르스 통신에 “미국은 협상 테이블을 떠날 핑계를 찾고 있었다”면서 “그들은 전쟁에서 패하고도 기대치를 낮추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IRGC와 연계된 타스님 통신은 “이란은 급할 것이 없다”며 “미국이 우리의 합리적인 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호르무즈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몇 개 사항들에 대해 상호 이해에 도달했으나 2~3개 주요 사항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며 “한 차례 협상으로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파키스탄 등 지역 내 우리 친구들 사이의 접촉과 협의는 계속될 것”이라며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회담은 비교적 희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원래 서로 다른 방에서 중재국인 파키스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는 근접 회담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밴스 부통령과 이란 측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한 방에 마주 앉는 직접 협상으로 진행 방식을 바꿨다.
회담에서는 레바논 휴전, 이란 동결 자산 해제 등도 주요 쟁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알자지라는 “회담이 오래 지속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사안들이 논의됐음을 시사한다”면서 “돌파구는 마련되지 못했지만, 진전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되고 미국 측 협상단이 귀국하면서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는 있으나 휴전 기간 2주 내에 타결에 이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