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스크랴빈 연주
대만·미국 거쳐 한국 관객과는 5월 만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1일 일본 오사카 공연 전 리허설을 하고 있다. 목프러덕션 인스타그램
지난 11일 오후 2시, 일본 오사카 심포니홀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이번 시즌 독주 레퍼토리를 만났다.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으로 구성된 이 레퍼토리는 3월30일 홍콩 리사이틀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 나고야(4월5일), 가와사키(7일), 도쿄(8~9일), 오사카를 거쳐 대만, 미국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5월 관객들을 만난다.
임윤찬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 D장조 D.850 ‘가슈타이너’에 대해 “어릴 때부터 사랑한 소나타였다”고 했는데 “특히 2악장은 슈베르트가 전반적으로 쓰는 음악언어와 다른 드문 노래가 나오는 악장이어서 더욱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1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를 다소 몽환적으로 시작해 곧이어 명랑성과 쾌활함이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콘서트홀을 만들어버렸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28세 때 갔던 온천휴양지 바트 가슈타인에서 작곡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신과 육체 모두 생기를 찾은 슈베르트의 느낌을 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슈베르트의 다른 곡들과는 다른 언어를 썼다는 2악장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건함이 숭고하게 들려왔다. 발랄한 1악장과 전혀 다른 세계였다. 2악장에서 청중을 푹 빠져들게 만든 임윤찬은 스케르초 3악장, 스승 손민수 교수가 “시계 같다”고 한 론도 4악장으로 1부를 마무리했다. 가슈타인에서 온천 휴양 이후 화창한 날씨처럼 다정하고 푸근하고 세심해진 슈베르트의 마음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2부는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2, 3, 4번.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을 한 무대에서 만나는 구성을 좀처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프로그램을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슈베르트는 너무 일찍(31세) 세상을 떠났고, 스크랴빈은 시대를 앞서가는 색채에 대한 집착과 불협화음들로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음악원)교수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소비에트대백과사전에 ‘그 누구도 그처럼 경멸을 받거나 큰 사랑을 받은 작곡가는 없었다’고 쓰였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렸던 작곡가였다. 그래서 음악인생에 억울함이 있을 법한 이들을 임윤찬이 이번 시즌에 선택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임윤찬은 “언젠가 스크랴빈의 10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다 칠 것이며 우선 2, 3, 4번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2번 소나타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2번은 너무 못쳐서 이번에 제대로 치려고 노력했으며, 3번은 어렸을 때 호로비츠와 소프로니츠키의 연주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4번은 10개의 소나타중 가장 마음이 안 가는 곡이었는데 이번에 배우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어”라고 선곡 이유를 설명했다. 서양 음악사에서 독창적인 존재감을 만들어냈던 이 러시아 천재의 음악을 임윤찬은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터치를 교차해가며 드라마틱하고 다채롭게 표현해냈다. 함께 공연을 본 작곡가 이나리메는 “임윤찬의 연주는 오페라같다”고 평가했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선 ‘브라보’와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임윤찬은 앙코르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스’를 들려줬다. 1937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출신 야콥 자크의 편곡 버전이었다 이 곡을 너무 감상적이거나 처지게 연주하지 않고 비교적 빠른 템포로 치면서 선율의 흐름과 숨결을 살린 것은 대단히 좋았다. 스크랴빈과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동창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만점을 받고 칭송 속에 졸업한 반면 스크랴빈은 교수의 미움을 받아 작곡부문 학위를 받지 못했다. 서로 다른 영광과 상처를 안고 살았던 이들의 사연이 겹쳐지면서 마치 이날의 ‘보칼리즈’는 큰 체격의 라흐마니노프가 작은 체구의 스크랴빈을 포옹해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매우 따뜻한 앙코르 선택이었다. 5월 한국으로 이어질 임윤찬의 리사이틀 투어가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