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서울시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마는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마당 한 귀퉁이의 감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장대로 떨군 붉고 단단한 대봉을 바구니에 담아 이웃과 나누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 감 배달 심부름을 할 때면 왜 꼭대기의 감은 안 따고 남겨둔 건지 궁금했다.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그 홍시는 날짐승의 겨울 양식인 ‘까치밥’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은 1960년대 경북 경주의 한 농촌 마을에서 본 까치밥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극찬했다. 인간의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 공존과 배려를 채워 넣는 것, 그게 바로 까치밥 정신이다.
정치권에도 까치밥의 미학이 피어난 때가 있었다. 2016년 총선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구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전남 순천에서 당선된 사례는 ‘까치밥 선거’로 회자된다. 한 정당의 싹쓸이 대신 상대 진영의 숨구멍을 열어준 영호남 민심을, 겨울새를 위해 홍시를 남긴 농부의 배려에 빗댄 것이다. 당시 험지에서 피어난 김부겸 62.3%, 이정현 47.1%의 득표율은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 “따뜻한 등불”(송수권의 시 ‘까치밥’에서)이었다.
하지만 거대 정당이 험지에서 서로 한두 석 나눠 갖는 정도론 정치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정치엔 더 많고 풍성한 까치밥이 필요하다. 지난 8일 권영국 정의당 후보가 서울 용산에서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함께 삽시다”를 외치는 권 후보 손을 노동당·녹색당이 꽉 잡았다. 서울을 각자도생의 불평등 도시가 아니라 소외된 이들의 삶을 고루 살피는 평등 도시로 바꾸자는 출정식이었다. 이들을 위한 까치밥은 김남주 시인이 말한 ‘평등’처럼 타인의 굶주린 배를 살필 줄 아는 마음이다.
주권자의 선의에만 기대는 까치밥은 한계가 있다. 현행 선거제는 까치밥을 남기고 싶어도 남길 수 없게 하는 장벽이다. 그들이 노동과 인권을 더 크게 외치고, 진보정당을 향한 표심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광역의회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와 같은 선거제 개혁이 꼭 필요하다.
붉은 홍시 한 알이 혹한의 겨울밤을 따스하게 비추듯, 이번 선거의 까치밥 한 표가 공존과 평등의 정치를 희망케 하는 등불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