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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입력 2026.04.12 20:06

수정 2026.04.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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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마다 들르는 동네 일식당이 있다. 호텔 주방장 출신인 사장님은 은퇴 후 서너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을 차리고 정갈한 솜씨의 가정식을 깔끔하게 내놓으신다. 메뉴의 가짓수는 몇개 없지만 요리솜씨가 늘 감탄스러운 곳이다. “결제되셨습니다.” “식사 나왔습니다.” “식판은 퇴식구에 갖다 놔주세요.” 허튼 말을 절대 안 하는 사장님은 하루 종일 세 문장을 반복하면서 묵묵히 돈가스를 튀기고 우동을 삶는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사장님이 안 계셨고, 다른 요리사가 주방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심심찮게 건물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는 빠른 속도에 인사도 없이 단골식당과 헤어진 게 벌써 여러 번, 이번에도 단골을 잃어버리게 된 건가 싶어 기운이 빠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도마를 앞에 두고 식재료를 다듬는 어정쩡하게 구부정한 자세, 콘트라베이스를 연상시키는 저음,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는 듯 핵심만 전달하는 짤막한 어투, 미동 없이 일자로 굳게 다문 단단한 입술, 내 앞에 선 남자는 분명히 사장님을 닮아 있었다. 다만 백발이 아닌 새까만 흑발을 하고. 사장님을 20년 전으로 되돌린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사장님의 아들이거나 친척이 아닐까? 사장님이 아프셔서 대타로 며칠간 식당일을 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혹시, 여기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아니요, 이 일식당은 제가 계속 운영해왔는데요.”

염색·스타일 변화로 달라진 사장님

낯선 남자가 내게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그 사람은 뿔테안경을 새로 맞추고, 백발을 블루블랙으로 염색해 스무 살이나 더 젊어 보이는 사장님이었다. 가르마를 바꿔 타고 앞머리에 잔뜩 힘을 줘 세련되게 스타일링한 헤어스타일은 패션잡지의 모델 같았다. 사장님이 스타일을 바꾸셨던 거였다.

나는 평소대로 구석자리에 앉아 통통한 우동 면발을 빨아들이며 사장님의 요리솜씨를 즐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사장님은 왜 훌륭한 요리솜씨만으로 당당할 수 없었을까? 백발을 손님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결심한 순간, 자기 나이를 버리고 스무 살이나 젊어지기로 결심한 순간, 새까맣고 윤기 나는 흑발이 되는 한순간, 내가 알던 사장님은 정말 사라지고 만 게 아닐까?

미헬 파버르의 소설 <언더 더 스킨>에는 여성의 육체를 뒤집어쓴 채 인간 남성을 사냥하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여성으로 살면서 남성의 육체를 식량으로 삼는 이 외계인은 여성도, 외계인도 아니다. 겉모습과 그 안쪽, 피부 밑과 뒤집어쓴 육체의 완전한 불일치. 안쪽과 바깥쪽의 두 존재는 영영 만날 수 없다.

젊고 건강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는 노인이 자연스럽게 늙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노인이라면 되도록 자기 나이를 숨겨야 한다. 근육이 퇴화하지 않도록 운동하고, 유행하는 새 옷으로 피부를 가리고, 염색한 흑발을 뒤집어써야 한다. 늙어도 늙지 못하는, 젊은이인 척하지만 결코 젊어질 수 없는 이 가짜 젊은이들은 노인도 젊은이도 되지 못한다. 젊은 피부를 뒤집어쓰고 젊은이 흉내를 내는 이들은, 젊음이 뭔지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리고 늙음은 만났어도 만난 척 안 해본 새로운 존재들이다. 소설 속 여성의 육체를 뒤집어쓴 외계인처럼, 그들은 젊음도, 늙음에 대해서도 영영 알 수 없다.

젊은 손님보다 더 검은 머리카락을 자랑하며 요리사가 묻는다. 늙은 사람이 젊어 보이는 게 왜 나쁘냐고, 관절이 쑤시는 걸 꾹 참고 젊은 피부를 뒤집어쓴 채 조금이라도 더 일해 돈을 벌어보겠다는데 왜 힐책이냐 따진다. 젊은 손님도 지지 않고 대든다. 분홍색 캡모자를 벗어던지며 모자 안쪽에 숨겨둔 백발을 공개한다. 늙은 게 뭐 자랑이냐고, 실은 나도 노인이라고, 오십견이 와서 팔이 안 올라가고 화장을 지우면 기미와 주름투성이인 피부가 이제 쉬고 싶다 호소한다고, 이런 늙은 모습으로는 마음 편히 외출도, 식사도 못하는데, 왜 내게 이러냐며 신경질을 부린다.

젊음 추구 사회, 갈 곳 없는 노인들

젊음을 뒤집어쓴 노인 둘이 서로의 늙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만약에 손님이 노인인 줄 진작 알았다면 굳이 염색을 안 했을 텐데요!” 사장이 후회한다. “만약에 사장님이 노인인 줄 알았다면 나도 굳이 모자를 뒤집어쓰지 않았을 텐데요!” 손님이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여기 있는 다른 누군가는 진짜 젊은이가 아닐까요?” 두 사람은 머쓱해져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저기, 사장님을 닮은, 수상한 젊은 남자가 주방을 차지하고 앉아 자기가 사장님인 척한다. 여기, 단골손님을 닮은, 수상한 늙은 여자 하나가 자기가 단골인 척 우동 국물을 홀짝인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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