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게양대 대신 ‘감사의 정원’
국민의힘 내에서도 “백지화” 공약
오세훈, 재여론조사 제안에 “이미 착공”
2024년 1월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 갈무리
이달 내 ‘받들어총’ 모양의 23개 석재 조형물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들어섭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의사를 밝힌 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감사의 정원’ 사업이 6·3 지방선거 전 마무리되는 겁니다. 조형물이 서울시 의도대로 ‘감사의 상징’으로 남게 될까요. 아니면 시민단체의 비판대로 “정치적 상징”으로 기억될까요. 점선면이 정리해봤습니다.
태극기 게양대 대신 ‘감사의 정원’
오세훈 시장이 광화문광장에 조형물을 설치하겠다고 처음 밝힌 건 2024년 6월25일이었습니다. 당시 오 시장은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고 디자인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에 한 달 만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국가상징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에 2024년 9월부터 받은 설계공모를 토대로 2025년 2월 감사의 정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공간에 6·25 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받들어총 모양의 석재 조형물 23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공간 조성에는 총 73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습니다.
서울시는 ‘자유와 인류 평화의 상징’을 형상화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11월 보도자료에서는 “6·25 전쟁 당시 희생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나타내는 집총경례(일명 받들어총)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군대에서 총을 든 채 하는 경례를 말합니다. 군 예법상 경례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인 상호 간의 존중을 나타내는데요. 집총경례는 보통 거수경례가 어려운 무장 상태에서 실시합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백지화” 공약
당초 2027년 완공 예정이던 ‘감사의 정원’은 6·3 지방선거 직전인 이달로 완공 시점이 당겨졌습니다. 이에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한글학회 등 문화단체 70여곳은 “오로지 오세훈 시장 개인의 상징을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야욕의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쟁자인 윤희숙 전 의원조차 지난달 16일 “서울시장이 이렇게 자의적으로 바꿔서야 되겠나”라며 백지화를 공약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보수층에 소구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공공간인 광장에 군사적 의미를 일방적으로 덧씌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시민운동의 결과 민주주의의 성지가 된 광화문광장의 역사성이 비민주적 조치로 훼손될 수 있다는 겁니다. 광화문광장은 1960년 4·19혁명 당시 학생 데모의 집결지이자 경찰 발포로 많은 이들이 희생된 장소입니다. 2016~20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가 열렸습니다.
1960년 광화문 부근 4·19 혁명 시위(왼쪽).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오른쪽). 서울시·경향신문DB
추진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생략되는 등 절차상 미흡한 점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광장처럼 국토계획법상 용도가 지정된 공간(도시계획시설)에 조형물을 설치할 때는 실시계획을 변경하고 고시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 등이 이뤄져야 하고요. 그런데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뒤늦게 보완에 나섰는데 이마저도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경향신문이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6년 제4차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회의’를 개최했으나 피난 대피로만 묻고 다른 토론이나 토의 없이 원안대로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게다가 담당 공무원은 도시계획시설 변경에 앞서 하게 돼 있는 주민 열람 공고와 관련해 “주민의견은 없었다”고 보고했는데요. 짧은 공고 기간 동안 의견 제출은 서류로만 받는 등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사업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행정 편의적인 처리만 이뤄진 셈입니다.
받들어총 조형물 예상 이미지. 서울시 제공
오세훈, 재여론조사 제안에 “이미 착공”
실제 시민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서울시는 조형물이 선정되기 전인 2024년 8월30일~9월2일 서울 거주 18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조사에서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49.5%, ‘동의하지 않는다’가 42.6%였습니다.
반면 시민단체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서울시민 10명 중 6명(60.9%)이 감사의 정원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글문화연대가 지난해 11월7일부터 11일까지 20~74세 서울시민 50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인데요. 응답자의 82.3%는 감사의 정원 사업에 대해 “오늘 처음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추가 여론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나오자 “이미 착공했는데 왜 이제 와서 여론조사를 하겠나”라고 일축했습니다.
오는 4월 말이면 광화문광장에 365일 감사를 표하는 집총경례 조형물이 들어섭니다. 시민들은 조형물을 보며 이 광장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텐데요. 4·19 혁명이 있던 해 11월 소설 <광장>을 발표하며 최인훈은 한국의 광장에 대해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사멸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그가 읽어낸 ‘광장을 개인의 밀실로 만들려는 욕망’이 시대를 뛰어넘은 통찰이었는지 되새길 만합니다.
서울시 여론조사(한길리서치)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은 ±3.1%, 시민단체 여론조사(티앤오코리아)는 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는 ±4.3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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