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린 심청은 ‘효’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 보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심청을 인당수로 밀어 넣은 것은 과연 효심뿐이었을까. 어린 소녀를 스스로 죽음으로 내몰게 만든 것은 약자를 희생양 삼아온 시대적 관습과 구조가 아니었을까.
국립창극단 ‘절창Ⅵ’의 두 주역 최호성(왼쪽)과 김우정. 국립창극단 제공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선보이는 국립창극단의 브랜드 공연 ‘절창’이 여섯 번째 무대로 돌아온다. 오는 4월 24일과 25일 양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절창Ⅵ’은 최호성·김우정 두 차세대 소리꾼을 전면에 내세워 판소리 ‘심청가’의 새로운 결을 드러낸다.
원작이 심청의 희생과 효심에 주목했다면, 이번 무대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영혼들을 달래는 상징적 인물로 심청을 다시 불러낸다. 남인우 연출은 지난 8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전통의 색을 지키면서도 동시대 관객과 어떻게 메시지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심청처럼 애달픈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헌사를 전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인우 연출가가 8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절창Ⅵ’ 라운드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아주 뛰어난 소리’를 뜻하는 ‘절창’은 국립창극단이 2021년 처음 선보인 기획 시리즈다. 젊은 소리꾼들의 진면목을 재발견하는 동시에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무대 연출과 음악적 실험으로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점이 특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완창하면 5시간 가량 소요되는 강산제 ‘심청가’를 100분으로 압축해 선보인다. 단순히 줄거리만 요약한 것이 아니라 심청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진혼’의 의미를 담았다.
앞서 ‘절창Ⅰ’에서 수궁가를, ‘절창Ⅱ’에서 춘향가와 적벽가를 선보였던 남인우 연출은 인터뷰에서 “심청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였다”고 털어놨다. 여성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을 미덕으로 만드는 서사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고전을 동시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열쇠가 됐다.
특히 원전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등장하는 중국 귀신들은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과 억울한 원혼들의 이야기로 과감하게 재해석됐다. 독립운동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비롯해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 사라진 혼령들의 다양한 사연이 소개된다.
남 연출은 “얼마 전 뉴스에 나온 공장 배출 가스에 질식해 숨진 19세 인턴 노동자의 이야기도 심청의 서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원전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한 것은 아니다. 판소리 심청가의 틀은 유지하면서 심청을 둘러싼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8일 서울 국립극단 뜰아래극장에서 소리꾼 최호성과 김우정이 ‘절창Ⅵ’ 주요 대목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최호성, 김우정 두 주역은 장면과 인물을 넘나들며 무대를 이끈다. 묵직하고 단단한 소리를 가진 최호성은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 석을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약속부터 덥석 해버리는, 어찌 보면 무책임하고 인간적인 약점이 많은 인물”이라며 “고정된 캐릭터에서 벗어나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싶다”고 밝혔다.
김우정은 지난해 파격적인 해석으로 주목받은 요나 김 연출의 창극 ‘심청’에 이어 다시 한번 심청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는 “작품 속 캐릭터들이 가진 에너지와 기운을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이번 공연에서는 인간 심청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심청가의 ‘화초타령’과 ‘심봉사 자탄하는’ 대목이 시연됐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화초타령’은 꽃이 피고 지는 순환의 원리를 통해 인생의 부침을 이야기한다. 남인우 연출은 “현대 사회라는 거친 풍파 속에서 소모되는 이들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마음으로 무대를 꾸몄다”고 덧붙였다.
국립창극단 ‘절창Ⅵ’ 라운드 인터뷰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 ‘절창Ⅵ’ 라운드 인터뷰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음악적 구성 또한 귀를 기울일만한 하다. 거문고와 피리, 철현금, 생황 등 전통 악기에 첼로와 루프스테이션까지, 5인의 실력파 연주자들이 합류해 즉흥 시나위를 완성한다. 특히 ‘북을 두리둥 두리둥’ 대목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결합해 기존 판소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대적인 진혼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고수이자 판소리 퍼포머인 이향하가 판소리터그(구성자)로 참여해 서사와 음악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