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불가피
업계 고유가·물류대란 부담 더 커져
정유사·석화사 대체 물량 확보 난항
일선 공산품 제조 차질도 길어질 듯
지난달 31일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포장재 가게에 단열재 겸 포장재로 사용하는 일명 ‘뽁뽁이’가 텅 비어 있다. 가게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200개씩 들어오던 물량이 이번 중동 사태 이후 끊긴 상태다. 문재원 기자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국내 산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미국이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 교통을 막겠다고 밝히면서 국제유가 상승과 물류 대란으로 인한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업계는 13일 대체 원유 수입처를 재점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먼저 각국에서 호르무즈 해협발이 아닌 대체 원유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원유는 고정된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어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며 “결국 스폿(현장 거래) 물량만 남는데 수요가 몰려 가격이 폭등했다”고 말했다.
정유사가 대체 원유를 확보하면 국내 운송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정부가 먼저 비축유를 빌려주는 스와프 제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스와프 제도로 6월 중순까지 물량은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마른 수건을 짜는 상황”이라며 “원유 수급 70%를 책임지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길어지면 7월부터는 물량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나프타 도입 단가 상승분의 50%를 보조하기로 했지만 가동을 중단한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재가동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나프타 가격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나프타는 t당 901.99달러에 거래됐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는 “한 달 전보다 19.95% 오른 수치”라고 설명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기존 가격에 ‘현물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나프타를 구매해야 한다”며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무산되면서 판매자가 부르는 게 값이 됐다”고 말했다.
주요 석화업체에선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섞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LPG는 나프타와 성질이 유사해 범용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비교적 값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나프타만큼 부타디엔 등 다양한 기초유분을 만들 수 없어 효율성이 떨어진다.
정유업계와 석화업계가 겪는 어려움은 고스란히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의약품 등 사실상 모든 공산품 제조가 차질을 빚게 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를 찾아 주사기·수액제 포장재, 식료품 포장재, 페인트, 반도체 부품 등 석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4곳을 방문했다. 김 장관은 “보건·의료, 생활필수품, 국가 핵심산업의 공급망에 단 하루도 차질도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전망도 어둡다. 항공사 영업비용의 약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인상으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이 3050만배럴인데, 유가가 1달러 상승할 때 3050만달러(약 450억원) 손해가 발생한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2위인 티웨이항공은 전체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형항공사(FSC)도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해운업계는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선박과 선원 안전 관리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선박은 26척으로 확인됐다. 선원은 173명에 이른다.
해상운송료는 고공행진 중이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0일 1890.77로 전주와 비교해 35.81포인트 올랐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중동 사태가 길어지면 답이 없다”며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