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의 종전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과 관련, 미국의 도발이 계속될 경우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측 협상 대표인 갈리바프 의장은 12일(현지시간) 엑스에 미 워싱턴 백악관 인근 주유소 가격이 표시된 지도와 함께 “현재 주유 가격을 즐겨라”라며 “이른바 ‘봉쇄’ 때문에, 머지않아 4~5달러(약 5950~7440원)짜리 휘발유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해상 봉쇄가 글로벌 에너지 대란과 유가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기준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약 3.8ℓ)당 4.125달러(약 6130원)까지 치솟았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의 게시물. 엑스 갈무리
갈리바프 의장은 이날 취재진에게 미국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은 지난 1년도 안 되는 협상 기간에도 우리를 두 차례나 공격했다”며 “신뢰를 회복해야 할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여전히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채무자 입장”이라고 말했다.
협상 결렬 원인에 대해선 “이란 대표단이 전문가들과 함께 ‘선의의 창의적인 제안’을 설계해 보여줬지만 미국 측의 성의 부족으로 신뢰를 쌓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우리도 싸울 것이며 논리를 가지고 온다면 우리도 논리로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협상장에 동행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협상이 미국 때문에 결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 체결이 가까워졌을 때 미국의 과도한 요구, 계속 바뀌는 목표, 해상 봉쇄 위협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해 선의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며 “선의는 선의를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협상 결렬 직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를 하며 미국과의 협상 상황을 전했다. 이란 대통령실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과 공정한 합의에 도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이중잣대와 패권적 태도”라며 “미국이 국제법의 틀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합의 도달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공을 미국으로 넘겼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며 이란 측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를 제거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을 현실화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 해군이 막대한 비용과 인명 피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란이 기뢰를 무분별하게 매설하면서 정작 이란도 기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제거 작업이 더욱 복잡해진 상황이다.
NYT는 음파탐지기로 기뢰 위치를 파악하고 잠수부가 이를 해체하는 방식은 위험도가 높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선박 신호를 모방한 유도 폭발 방식 역시 일부 기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NYT는 “모든 기뢰를 제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란의 모든 민간 해상 기반시설을 파괴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