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국가폭력이 훼손한 인간의 존엄과 그들의 희생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가 곳곳에 담겨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문장은 죽은 자의 영혼과 남겨진 자의 고통을 연결하려 한 작가의 몸부림이다. 소설의 마지막 “당신이 나를 꽃이 핀 곳으로 끌고 가주길 바란다”는 대목은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이 더는 외롭지 않도록 살아남은 이들이 기억해달라는 주인공 동호의 독백이자 작가의 호소였다. 제대로 기리고 기억되지 못한 참사의 고통은 남은 이들의 삶까지 잠식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강은 세월호 참사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결정적 계기라고 했다. 세월호는 그에게 ‘끝나지 않은’ 광주였기 때문이리라.
세월호 참사 이후 열두 번째 맞는 봄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누군가는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차가운 팽목항 어귀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이들을 가르는 경계선은 기억이다. 전자는 시간의 흐름 속에 빠르게 휘발되는 녹슨 기억으로, 후자는 안타까움을 가눌 길 없어 TV 화면 속 침몰하는 배를 향해 손을 뻗치던 생생한 기억으로 세월호 참사를 대한다. 이 간극 속에서 지워진 이들이 있다. 희생자의 형제자매들과 참사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청년들이다. 이들은 “부모님 걱정하시니 너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죽은 친구들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으로 슬픔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아직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4·16재단이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이다.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캠페인은 재난을 경험한 청년들이 생명안전단체에서 일하며 참사 피해자를 지원하고(인턴십 사업), 세상과의 접점을 넓히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자(꿈응원 사업)는 취지다. “이들이 고통과 마주 보게 하는 것이 공동체가 참사를 기억하는 길”(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정치권도 독립적인 재난조사 기구를 상설화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으로 ‘기억의 수호자’에 동참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