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가림성 느티나무
충남 부여 성흥산에는 백제 동성왕 시절 쌓아 올린 가림성 옛터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하늘을 우러러 당당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림성 느티나무’다. 오래도록 ‘성흥산성 느티나무’라 불리다 최근 성의 본래 이름인 ‘가림성’을 확인하며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는 나무 높이 22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5.4m의 규모로 자랐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른 느티나무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전체 풍광도 장관이지만,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가 빚어낸 기묘한 형상은 더없이 신비롭다.
나무 나이를 400년으로 추정하는 이 나무에는 귀한 사람살이의 향기가 담겨 있다.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 장군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에 담긴 이야기다. 1100년 전 인물인 유금필 장군의 지팡이와 지금의 나무 사이에는 7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설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삶과 가치의 메타포다.
고려 개국 초기에 이 마을 사람들은 후백제 패잔병의 노략질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때 이 지역에 주둔하던 유금필 장군은 마을 사람들에게 군량미를 내어주며 그들의 삶을 보살폈다. 마을 사람들이 겪는 생존의 위기를 함께한 최고의 배려였다. 장군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장군의 생사당을 세울 정도였다.
이때의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대대로 이어졌고, 가림성 성곽에 서 있는 큰 나무를 바라보며 은혜로운 장군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의 전설이 지어진 바탕이었다. 점령군의 수장이면서도 점령지의 백성을 보살핀 선한 영향력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지어진 전설이다.
천연기념물은 단순한 생물학적 표본이 아니라, 역사와 인문을 품은 ‘자연유산’이다. 이제 우리가 이 나무를 지켜야 한다.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가 천 년 뒤에도 그 자리에서 사람살이의 무늬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을지는, 자연을 대하는 지금 우리의 품격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