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연설가인 노무현의 역사적 연설 중 하나는 2002년 울산지역 국민경선 연설이다. 그는 처절하게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기억을 공유하는 지역민과 자신을 묶어 하나의 ‘기억의 공동체’로 호명했다.
“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울산에 야당을 건설하자 울산에 민주정당을 건설하자는 충정 하나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죽어가고 패가망신한 많은 가슴 아픈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그 동지들 지금 이 자리에 계시잖습니까.” 노무현은 울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노무현 돌풍’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강고하게 닫힌 철벽같은 마음에 균열을 내는 건 그 장벽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간절하게 쌓아 올린 ‘대항적 기억’이다.
권력은 그 위험성을 잘 알기에 어떻게든 비주류의 기억을 고립시키려 한다. 1946년 10월 대구항쟁은 ‘좌파가 사주한 폭동’으로 취급됐고, 팔공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의 흔적이 철저히 표백돼 있다. 그렇게 과거 ‘조선의 모스크바’라 불렸던 도시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 됐다. 별명의 변화만으로도 굴곡진 현대사의 험난함과 기억을 짓누르는 하방 압력의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그랬던 대구가 움직이고 있다. 김부겸은 공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다시 도전한다. 그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자부심의 서사에 밀려난 대항적 기억, 배신당한 기억을 언급했다. “공천 주는 중앙당만 쳐다보면 되니까 대구시민을 거수기 취급했습니다. 말로만 보수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꺼져가는데 어디 청심환 하나 구해온 적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대구의 선택을 전국이 지켜볼 것이다.
끝까지 속단할 수 없는 것이 선거라지만, 김부겸의 행보로 대구에 ‘이번엔 다르다’는 변화의 바람이 분다. 단순히 사람 하나 바꾸겠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단한 보수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던, 억압당하고 배제된 무수한 기억과 목소리가 그 바람에 실려 있다. 애초에 노무현 돌풍이 노무현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듯, 대구 민심의 변화도 김부겸 개인이 아니라 내란에 저항한 시민들이 만든 것이다.
12·3의 여진은 지방선거까지 이어진다. 변화는 기존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수의 심장은 늙어 죽을 것이다.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 예언에 가까운 선언은 그간 성벽에 힘껏 부딪쳐온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이미 새로운 대항적 기억을 형성했다. 다른 기억이 틈입한 공동체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렇게 정치의 토대가 되는 사회가 변한다. 김부겸도 이에 응답했다. “이제 우리 시민 스스로가 대구의 대변혁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제가 클 때 대구는 저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 자부심을 우리 아들딸들도 느끼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지의 진동은 보수의 성벽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있다. 그 틈새 사이로, 12·3의 새로운 기억이 다른 목소리를 부르고 있다. 지난 4월8일 성소수자 커플 임아현·최진아는 동성 간 결혼을 수리할 수 없다는 대구 남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에 불복신청을 했다. 대구의 딸들은 정치의 한계를 넘어 더 멀리 나아가 사회를 그 근저에서부터 바꾼다. “이미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우리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제도만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는 제도가 현실에 맞게 한 걸음 따라와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평범하게 살게 해주세요.”
같은 날 울산·부산에서도 각 한 쌍의 동성부부가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야말로 내란을 막고 광장을 지킨, 한국 사회의 당당한 시민이다. 김부겸의 호소는 여기까지 닿아야 한다. 벽을 두드리는 용감한 목소리가 참담한 좌절의 기억으로 남는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성용 사회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