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미국에 갔다.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으로 향했는데 이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외면할 수 없기에”(페이스북)라고 한다. 출국 일정을 당초 예정보다 사흘 앞당겼다. 체류 기간도 2박4일에서 5박7일로 늘어났다.
6·3 지방선거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18%(전국지표조사)~20%(한국갤럽) 수준이다. 여러모로 당대표가 자리를 비울 시기가 아니다. ‘도미(渡美)’가 아니라 ‘도미(逃美)’라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동혁은 출국 전 인터뷰에서 지지율 하락에 대해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권 초 정책을 쏟아내는 데 따른 착시 효과가 있다. 실망하신 보수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한국일보)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4월 FIFA 랭킹이 1월(22위)보다 세 계단 떨어졌다. 25위다. 1~30위 국가 중 3계단 하락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직전 ‘월드컵 모의고사’에서 연패한 탓이다. 대표팀은 코트디부아르에 0-4, 오스트리아에 0-1로 졌다. 주앙 아로수 코치는 이 와중에 포르투갈 언론과 인터뷰하며 ‘바지 감독’ 논란을 불렀다. “협회는 대외적 얼굴이 될 한국인 감독과 경기 아이디어를 개발할 유럽인 지도자를 원했다. 내가 현장 지도자다.”
경기력도, 기강도 떨어진 대표팀에 팬심은 지쳐간다. 좌절과 분노를 넘어 체념과 냉담으로 향하고 있다. 홍명보도 인터뷰를 했다. “월드컵 조별리그를 잘 넘기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때는 어디까지 올라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동아일보)
장동혁·홍명보는 묘하게 닮았다. 인공지능(AI)의 습격으로 모두가 일자리를 위협받는 시대. 이들의 직업 안정성은 최상급이다. 지지자와 팬들이 외면해도 끄떡없다. ‘언터처블’이라 불릴 만하다. 그들의 생존 비결은 탐구 대상이다.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에서 A매치 2연전을 치른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우선 ‘정신승리’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뷰를 보면 짐작할 것이다. 다음은 ‘제 탓’이 아닌 ‘남 탓’이다. 장동혁은 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자 비공개 회의에서 ‘절윤(전 대통령 윤석열과의 결별) 결의문까지 냈는데 왜 지지율이 떨어지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후속 조치를 통해 당의 환골탈태를 이끌어내지 못한 자신은 탓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TV를 켜면 뉴스의 90% 이상이 중동전쟁으로 덮이기 때문에 야당이 뉴스에서 사라지고 있다”(매일신문 유튜브)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홍명보는 코트디부아르전 참패 후 “공격에선 찬스가 났을 때 살리지 못했고, 수비에선 일대일 싸움에서 부족해 실점했다.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물 보충 휴식) 후 집중력이 떨어졌다”며 선수들을 탓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리백(Three-Back·중앙수비수 3명 배치) 전술 등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는데도 ‘제 탓이오’는 없었다.
장동혁·홍명보가 버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든든한 뒷배다. 장동혁에겐 ‘윤어게인’ 세력이 있다. 지난해 8월 당대표 선거에서 장동혁은 김문수 후보에게 일반 국민 여론조사(20% 비중)에서 뒤졌다. 하지만 책임당원 투표(80% 비중)에서 앞서며 승리할 수 있었다.
당시 75만명이던 책임당원은 최근 100만명을 넘어섰다. 신규 책임당원은 강경 우파 성향이 많고, 중도 성향 당원은 상당수 탈당했다고 한다. 당의 주류가 바뀌었다. 그러니 주권자 전체의 여론 지형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거다.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해도 ‘대표 장동혁’이 버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홍명보에겐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가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후임으로 그가 선임되는 과정에서 특혜·불공정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사를 통해 정 회장 등 관련자들의 중징계를 요구하고, 감독 재선임도 권고했지만 유야무야됐다. 축협이 이의신청과 소송으로 대응하면서다.
정몽규는 지난 2월 “대표팀은 월드컵 3차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다. 쉽지 않은 결과인데 홍 감독에게 새겨진 주홍글씨 탓에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뉴스1 인터뷰)며 홍명보를 감쌌다. ‘회장님’ 눈에 싸늘한 팬심은 보이지 않는가. ‘월클’ 손흥민·김민재·이강인 선수가 귀국해도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이 텅텅 빈다. 대표팀 평가전 중계방송 시청률은 수직 낙하 중이다.
‘언터처블’에게도 심판의 날은 온다. 주권자와 축구팬들은 6월을 기다리고 있다. 리더는 결과로 입증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자리다. 두 사람의 무운을 빈다.
김민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