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 들어오는 ‘피지컬 AI’
하청·비정규직 고용불안 더 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올해 초,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에서 현대자동차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한 장면은 상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미 AI의 영향을 많이 받은 회계·IT 등 화이트칼라 노동과 달리, 비교적 AI의 파급력이 적을 줄 알았던 공장 생산직 등 블루칼라 노동도 더는 ‘일자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죠.
그런데 같은 공장 안에서도 AI의 고용 충격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원청 노동자보다는 하청 노동자가 더 큰 불안에 내몰립니다. 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굳어진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오늘은 AI에 밀려나는 노동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경향신문 기획기사 <딸깍, 노동>을 소개해드립니다.
“니는 몇 년 남았노?”
경향신문 취재진은 먼저 울산에 있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공장을 찾았습니다. 하루 6000여대의 신차가 쏟아져나오는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단지인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요즘 의문과 불안이 감돕니다. 울산공장에는 아직 아틀라스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미 모두 봤습니다. 아틀라스가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지를요.
아틀라스가 없는 지금도 차체 조립은 일부 공정이 100% 자동화됐고, 도장 공정도 90%는 자동화됐다고 노동자들은 봅니다. 지난해 말 새로 지어진 전기차 전용 공장(6공장)에서는 로봇개 두 마리가 돌아다니면서 완성차의 품질을 검사하고 ‘오케이’ 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보통 공장 하나에 4000명이 들어가는데, 6공장 투입 인원은 500명 이하입니다.
부품과 엔진 등을 최종 조립하는 ‘의장’ 공정은 아직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숙련공들은 “여기서 볼트를 더 조이면 불량이 난다”는 걸 손의 감각으로 알아챕니다. 하지만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그마저도 언제 대체될지 불안합니다. 의장 라인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니는 몇 년 남았노?”
특히 현대차 공장 노동자의 30~40%를 차지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더 큰 불안을 느낍니다. 이전에도 꾸준히 자동화가 진행됐고 그때마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이번에 현대차가 재건축하는 공장에서 사람을 줄이고 AI 로봇으로 그 자리를 채울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소에 들어선 ‘자동화 연구동’
“아직 조선업은 (자동화가) 멀었습니다. 제 아들도 일할 수 있을 거예요.”
현대차 공장 옆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노동자들은 아직 AI 로봇을 ‘먼 미래’라고 봅니다. 조선업은 사람의 손, 그것도 숙련공의 감각이 특히 중요한 업종입니다. 배마다 내·외부 설계가 다르고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마음 한쪽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출입이 통제된 ‘자동화 연구동’이 들어섰고, 한화오션은 2030년까지 공정 70%를 자동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I 도입에 의한 노동 약자의 피해는 자동차 공장보다 조선소에서 더 클지도 모릅니다. 조선소 인력의 60% 이상이 하청 노동자이기 때문이죠. 저임금 때문에 숙련공들이 떠난 빈자리를 지금도 재하도급(물량팀)이나 이주노동자로 때우는 중인데, 자동화가 진행되면 숙련공은 더 급속도로 줄어들 겁니다.
숙련공이 줄면 공정이 늦어지고, 과로와 무리한 작업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요즘은 주 52시간으로도 부족하다”며 “지금 건조 중인 배만 20척이 넘고 ‘빨리빨리 하라’는 얘기만 나온다”고 말해요. ‘안전을 위해 AI 로봇을 도입하겠다’는 조선업체의 말을 노동자들은 믿지 않습니다. 노동안전을 보장하려면 공정을 자동화하는 것보다는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정상화하는 게 맞는다고 노동자들은 말하거든요.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할까?
기업 입장에서 AI를 통한 자동화는 ‘비용 절감’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자리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청년·여성이나 하청·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내 약자에게 더 크죠. 정부 입장에서도 AI로 인한 고용 위기는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고요. 민주노총은 AI를 노동현장에 투입할 때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노동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하자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어요.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등은 지난 2월 논문에서 ‘친노동자 AI’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AI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대신, 노동자가 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협력 도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비행기 정비사가 기본 공구만 있어도 정비를 할 수 있게 돕는 자동화 기술은 노동의 가치를 낮추지만, 비행기 정비사가 우주선 정비까지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AI 기술은 숙련 노동의 가치를 지켜 주죠.
논문은 “중요한 질문은 ‘AI를 도입할지 여부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밀려오는 AI 앞에 우리의 ‘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딸깍, 노동>은 앞으로 4회 더 연재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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