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하 외교장관 특사, 이란 고위급 접촉
향후 해협 개방 때 대비한 정지 작업 해석
선원·교민 안전 협의…국제사회 공조도
호르무즈 해협. 로이터연합뉴스
정부가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해협에 정박 중인 한국 선박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향후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됐을 때 한국 선박의 신속한 통항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란에 5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선박이 해협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이란과의 양자 협의와 함께 국제사회와의 공조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의 안전과 통항 관련 유관국들과 소통해 나가고 있다”라며 “선박 안전 차원에서 유관국들에게 선박 정보를 제공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이란 측에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한국 선박 26척의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병하 외교부 장관 특사도 이란에서 진행한 고위 당국자들과 면담에서 이들 선박 정보와 관련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특사는 지난 주말부터 이란에 체류하면서 이란 측 고위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양측은 중동 정세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하고 한국 선박과 선원, 교민 등의 안전과 모든 선박의 통항 문제를 주제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이란 측에 선박 정보를 제공하고 정 특사도 관련 논의를 한 것은 향후 해협 통항이 가능할 때를 대비한 정지 작업으로 해석된다. 향후 해협이 개방됐을 때 한국 선박의 통과를 보다 빠르고 원활하게 하려는 게 정부의 구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호르무즈 해협에 2000여척의 선박이 정박 중인 만큼, 개방 이후 선박이 모두 빠져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외교장관 특사를 전쟁 중인 이란에 위험을 감수하고 파견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7일 2주간 휴전에 합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키로 했다. 개방 조건을 두고 미국·이란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해협이 온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휴전 기한은 아직 남아 있다. 또 미국·이란의 최근 종전 협상 결렬 이후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긴 했으나, 향후 양측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된다면 해협이 개방될 가능성도 정부는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아울러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 관련 국제사회의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의혜 외교부 차관보는 이날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화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는 약 30~40개국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앞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주도한 외교 및 군사 당국 회의에도 동참한 바 있다. 이들 회의는 분쟁 상황이 안정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화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는 종전 이후에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행사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국제사회와 함께 관련 대책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한국 경제 등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정부는 당장 해협에 묶인 한국 선박을 빼내기 위해 이란과의 양자 협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해협 안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에 동참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우리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라며 “고도의 외교적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이란과 휴전 합의, 첫 협상의 결렬에 따른 앞으로 전개될 상황 등을 모두 감안해 양자적 및 다자적 차원에서 관련국들과 소통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5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에는 레바논에도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을 통해 2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외교부는 “최근 중동 정세와 관련해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 의도와 무관하게 이란과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 협의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