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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고 싶은 나

입력 2026.04.14 19:58

수정 2026.04.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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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뺨에 옅은 얼룩이 조그맣게 보이더니 점차 개수가 늘어나고 짙어졌다. 마을로 내려간 김에 피부과를 찾았다. 편평사마귀라 불리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레이저를 쏘면 지워진다고 했다. 쏜다고 하여 겁을 내자, 이 정도는 레이저 축에도 안 들 가벼운 시술이며 약간 홍조를 띨 수 있을 뿐 일상엔 지장이 없을 거라 설명해주셨다. 겉보기에 별로 티가 나지 않더라도 전염성이라 내버려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길 수 있댔다. 맥락상 그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은 아닐 터였고 재즈곡 노랫말처럼 누군가와 뺨에 뺨을 맞대어 춤출 상황이야 없겠으나, 신경은 쓰였다. 내친김에 바로 치료받기로 했다. 마취연고 처치 후 양 볼에 레이저를 팡 쏘았다. 들은 대로 시술은 간단했다.

이튿날 아침, 세수하려다 거울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양 볼이 벌에 쏘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병원으로 전화해 증상을 설명하자 하루이틀 두고 보라 하셨지만, 사흘 나흘 지나도 빨갛게 부푼 피부는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닷새째에 내원하니 의사 선생님이 시술 흔적이 이 정도인 경우는 흔치 않다며 놀라셨다. 일단 더 지켜보자며, 배석한 간호사께 재생 테이프를 오려 붙여주라 하시는 거다. 헉, 안 그래도 며칠째 머리칼로 뺨을 가린 채 다녔는데 테이프까지 덕지덕지 붙이면 얼마나 괴물처럼 보이겠는가! 코로나 이전, 일회용 마스크가 일상화되기 전의 일이다. “분명 홍조 증상이 전부라 하셨잖아요.” 격앙되어 따져 물었다. “이거 혹시 의료사고 아닌가요?”

“의료사고요?” 온화한 의사 선생님은 그 단어가 사용된 데에 마음이 상한 듯했다. “그건 가볍게 쓸 표현이 아닙니다” 하셨다. 아차, 내가 경솔했구나 싶었다. 잦아든 목소리로 그럼 왜 제 경우만 이런지 되묻자 그분이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신의 뜻이었나 보죠.”

잠시 멍해졌다, 이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꼬리가 올라갔다. 중환자실도 아닌 일반 진료실에서 경미한 시술 부작용을 두고 신의 뜻까지 나오다니. 신이 설령 화가 나더라도 레이저 흉터를 느릿느릿 아물게 하는 방식으로 벌할 리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분이 “도를 아십니까” 부류로 여겨지진 않았다. 부풀어 오른 데가 가라앉을 때까지 무상으로 재생관리를 해주신다는 걸 보면 신의 이름을 팔아 이재를 취하려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다. 그럼 왜 그런 말을. 의아해하다 문득 성당에서 날 보셨던 건 아닐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만 해도 날마다 아침 미사에 갈 만큼 신앙은 내게 큰 의미였고, 그 피부과는 성당 바로 옆에 자리했으니 말이다.

불현듯 불안해졌다. 참말로 성당에서 자주 뵌 분이면 어쩌지. 미사 중 유순한 얼굴로 “평화를 빕니다” 목례하던 신실한 ‘자매’가 이번엔 앙칼진 말투로 의료사고 운운한 데 배신감을 느껴 부지불식간에 그리했던 것이라면. 전전긍긍하며 기억을 되짚다 생각했다. 내가 종교를 가졌음을 아는 이에게 성마른 언행을 들킨 거면 한층 자괴감을 느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면 내심 안도하는 심리라니. 그 선별적 부끄러움에 전제된, 보이고 싶은 나에 대한 애착이 부끄러웠다. 자기애란 인형 안에 또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인형을 열면 더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목각인형 같은 걸까 했다.

지금도 종종 그런다. 생활세계의 갈등 상황에서 항의하려다 상대가 혹시 내 글을 읽어봤거나 내 수업을 들어본 건 아닐지 멈칫한다. 지면에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가 서로 건넬 찰나적 온기’에 관해 써놓고선, 강의실에서 ‘상처 입을 가능성을 통한 사회적 연대’를 설명해놓고선, 말은 저리하다니 할까봐 입속의 칼날을 꿀꺽 삼킨다. 그 선별적 부끄러움이 여전히 부끄럽다. 그래도 보이고 싶은 나를 의식해 다툼의 말을 전하지 않음으로써 다툼의 장면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제한 것일 테니, 거기 희망을 둔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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