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년 만에 에너지 위기가 되돌아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가스 공급의 단절로 인한 유럽 에너지 위기였다면,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중동의 석유와 가스 등 공급이 끊겨 주로 아시아가 타격을 받는 위기다. 또한 반복되는 에너지 위기는 분열하는 세계질서에서 ‘에너지의 무기화’가 글로벌 갈등의 강력한 요인으로 부상했음을 말해준다.
인류가 화석연료라는 고밀도 에너지에 의존해 근대 문명을 이룬 뒤, 에너지 흐름을 차단해 상대를 위협하는 전략은 사실 오래전부터 사용됐다. 일찍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을 석유 봉쇄 조치로 압박한 적이 있으며, 1973년 아랍 국가들이 단행했던 가혹한 석유 금수와 감산 조치는 전 세계 경제에 파괴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몰고 왔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상호 의존이 점점 깊어지면서 상대방의 급소를 겨눌 무기는 에너지보다는, 금융 제재나 반도체 장비 같은 첨단 기술, 또는 희토류 같은 원료 제한으로 국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이라는 두 번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무기화’가 재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에너지를 글로벌 공급망에만 의존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각 국가는 ‘에너지 안보’를 최고 전략으로 고민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 에너지 위기는 과거 화석연료 위기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에너지 절약’이나 ‘가격 통제’ 또는 ‘수입선 다변화’ 같은 전통적인 에너지 위기 대처법 이외에,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마주한 석유 충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바로 태양광이나 전기차처럼 더 싸고 더 지역적인 데다가, 신속하게 대규모로 도입할 수 있는 대안이 이미 눈앞에 있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를 대처할 ‘에너지 전환’이라는 새로운 방패를 손에 쥔 것이다. 실제 이번 에너지 위기로 유럽에서는 스페인,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가장 덜 충격을 받았는데, 두 나라 모두 재생에너지 비중이 주위 국가들과 비교해 높았다. 또한 이란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한 달 남짓 만에 무려 60여개 국가가 쏟아낸 185개 대응책 가운데, 적지 않게 교통과 건물, 전력 소비에서 ‘에너지 전환’이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재생에너지는 온실가스를 줄일 강력한 ‘기후 해법’이면서 동시에, 분열하는 세계에서 에너지 무기화에 대응할 강력한 ‘에너지 안보’ 수단이 됐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대목이 있다. 재생에너지도 에너지 무기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대로 재생에너지 시대의 자원은 “봉쇄되거나 무기로 악용될 수 없다. 햇빛에 가격 급등은 없으며, 바람에 대한 금수 조치도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제조와 공급을 압도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태양광이나 풍력터빈 수입국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급소(choke point)’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중국은 태양광 제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풍력 공급망의 핵심 부품 분야도 비슷하다. 또한 배터리 가치사슬의 모든 단계에서 85% 이상도 중국이 지배하며, 전기차 제조의 중국 비중 역시 갈수록 상승하는 중이다.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이 펼쳐지는 이 새로운 시대에 ‘에너지 전환’의 길목에서 중국이 재생에너지를 무기화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그런데 이 길목에서 특별히 한국의 역할이 주목받을 수 있다. 태양전지와 풍력터빈, 배터리와 전기차, 그리고 히트펌프 등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핵심 제조 역량을 두루 보유한 국가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거의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최근까지 우리의 녹색 기술과 녹색 제조 잠재력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결과, 유력 녹색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버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주는 보조금을 좇아 미국 등으로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녹색 제조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버텨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재생에너지 무기화의 위험성 앞에서 유럽과 미국 등 많은 국가가 중국을 대신할 재생에너지 공급 다각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 지점에서 한국의 녹색 제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의 승자독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에너지 위기를 에너지 전환으로 돌파하는 최근 추세는 태양전지나 배터리, 전기차 등 녹색 제조의 수출 가능성까지 확대하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 위기를 전환의 계기로 삼을 뿐 아니라 녹색 제조 부활의 계기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