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8일 발발한 중동 사태가 40일 이상 이어지면서 전쟁의 충격이 점차 실물경제에 전이되고 있다. 미국의 평균 가솔린 가격은 갤런당 3달러가 채 되지 않던 상황에서 큰 폭으로 뛰면서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레벨인 4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런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오롯이 반영하면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전년 대비 3% 이상 뛰는 등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인 2%에서 재차 멀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점차 강해지면서 그 충격이 경제를 강하게 뒤흔들었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닮아 있다는 우려를 전하는 투자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러·우 전쟁 당시와는 경제 상황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물가의 레벨을 봐야 한다. 러·우 전쟁은 2022년 2월24일에 발발했는데, 전쟁 이전에 이미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점차적인 상승 기조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1년 전인 2021년 3월 미국 물가지수는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훌쩍 넘어섰는데,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연준이 시행한 대규모 부양책이 물가를 자극한 영향이 매우 컸다. 당시 연준은 물가 상승 기조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물가 상승을 일시적으로 규정하면서 대규모 돈 풀기라고 할 수 있는 양적완화를 이어갔다. 이런 돈 풀기로 미국 내 소비 수요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으로 멈추었던 공급망의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수요의 폭발과 공급의 축소라는 이중고가 물가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수요 사이드의 물가 상승 압력이 강한 상황에서 러·우 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물가 상승세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당시 소비자물가지수는 빠른 상승세를 보이며 2022년 중반부 전년 대비 9%를 넘는 고물가 기조를 나타냈다. 강한 수요와 함께 극단적으로 높은 에너지 가격이 결합되며 물가를 크게 자극하자 연준은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서게 된다. 당시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던 기준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2023년까지 5.25~5.5%로 인상했고, 통상적인 금리 인상에 적용되는 0.25%포인트를 크게 뛰어넘어 0.5%포인트, 0.75%포인트의 빅스텝, 자이언트스텝도 현실화되었다. 극단적이고 빠른 물가 상승과 기존보다 훨씬 높은 금리는 미국의 실물경기에 타격을 주었고, 2022년 하반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게 높아진 바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러·우 전쟁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전쟁 이전에 이미 강한 수요의 폭발보다는 미국 고용시장을 중심으로 강했던 미국의 소비가 조금씩 식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물가 상승 압력도 크게 낮아지고 있었는데 2022년 9.1%를 고점으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던 미국의 물가는 지난 2월 2.5%까지 하락하면서 연준의 목표치에 수렴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2022년처럼 강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았던 만큼, 그리고 아직 전쟁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현재의 전쟁 충격이 당시처럼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연준의 기준금리 역시 당시에는 제로 수준이었던 데 비해 현재는 3.5~3.75%를 유지하고 있는바, 러·우 전쟁 당시처럼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는 극단적 금리 인상의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러·우 전쟁 당시보다 부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언급했던 것처럼 2021년 3월 목표치인 2%를 넘어선 이후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간신히 2%대 초반으로 수렴하는가 싶으면 이란 사태와 같은 이벤트로 인해 다시 높아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런 고물가 기조의 반복은 인플레이션의 고착화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고질적인 고물가는 치료도 쉽지 않지만 물가 안정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이 쉽게 재발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러·우 전쟁 당시와 같은 극단적 고물가·고금리의 충격까지는 제한적이겠지만, 이번 전쟁도 장기화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고착화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