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후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1일부터 2주간 지하철, 버스, 길거리, 음식점, 서점 등에서 노란 리본을 단 시민 11명을 만났다. 시민들은 노란 리본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게 하는 등대’라고 표현했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란 리본을 보면 세월호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망원역 인근에서 합정역으로 가는 271번 버스 안에서 만난 이지윤씨(20)의 가방에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강한들 기자
‘노란 리본’은 등대···“대중 속 한 줄기 빛 같아”
서울 마포구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고영환씨(43)는 노란 리본이 자신에겐 등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각자 추모하는 이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고씨는 참사 이후 자신의 가방과 서점 입구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추모의 의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리본을 유지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됐다. 2016년 한 노인이 서점에 붙은 노란 리본을 지팡이로 치면서 “저런 걸 왜 붙여뒀냐”고 항의했다. “지겹다”고 말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부담을 느낀 고씨는 2019년부터는 가방에서 리본을 떼기도 했다. 고씨는 “리본을 달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고 했다.
그런 고씨에게 용기를 준 건 노란 리본을 단 다른 시민들이었다. 고씨는 이달에만 노란 리본을 단 시민 3명을 만났다. 그는 “수많은 대중 속 한 줄기 빛처럼 리본이 보였다”며 “나는 가방에 달지 못하고 있는데, 대단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우연히 서점 앞을 지나가며 노란 리본을 보게 되면 같이 추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망원역에서 만난 허성광씨(62)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진다”며 “그들도 안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로 발전하길 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허씨는 “참사를 반복해서 겪다 보니 어른인데도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든다”며 “그래도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유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희생자를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빛바래지 않은 노란 리본
고영환씨(43)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한 독립서점 문에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고씨는 “같은 시기 붙인 ‘문화누리’ 스티커는 빛이 바랬는데, 노란 리본은 색이 잘 유지돼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고등학생이 돼서야, 참사가 느껴졌다
지난 1일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앞에서 만난 이가은씨(21)는 12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참사 당시 이씨는 부모님이 뉴스를 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지만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던 이씨가 세월호 참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고등학생 때다. SNS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뉴스나 과거 영상을 보게 됐다. 단원고 학생들이 부모에게 남겼던 마지막 메시지도 봤다. 이씨는 “희생자들이 정말 어린 나이에 죽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 입학 후 광화문에서 유가족이 나눠 준 노란 리본을 받았다. 이후 리본을 늘 가방에 달고 다녔다. 그는 “유가족에게 약속을 지키는 중”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버스에서 만난 이지윤씨(20)는 참사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는 “희생당한 학생의 나이가 돼 참사의 의미를 알게 됐고, 그 나이를 넘어서면서 어른들의 욕심으로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했다는 무게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2년 전 참사 10주기 때는 관련 뉴스와 영상을 보면서 학교 기숙사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고등학교에서 노란 리본을 친구들과 공동구매로 샀다. 가방은 바뀌었지만 노란 리본은 지난 5년간 바뀌지 않았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서지우양(18)의 가방에 노란 리본 뱃지가 달려 있다. 우혜림 기자
11주기에, 탄핵 광장에서···어른의 책임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만난 윤예진씨(22)는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갔다가 세월호 참사 11주기 집회에도 가게 됐다. 윤씨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참사를 알고는 있었지만, 사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탄핵 광장에 가면서 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한 문제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리본을 달고 다니지 않더라도 그 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큰 참사는 함께 기억해야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참사를 막기 위해 계속 함께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망원역 개찰구 앞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허성광씨(62)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강한들 기자
조관용씨(63)도 윤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노란 리본을 받았다. 조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참사가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며 “12년이 지나는 동안 유가족들이 위로받지 못해 집회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모습을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조씨는 “세월호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됐다”며 “책임을 미루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점을 새기기 위해 리본을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에서 만난 조한준씨(62)는 노란 리본을 ‘어른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는 “어른들이 제대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반성의 의미에서 2년 전부터 계속 리본을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 인근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조관용씨(63·왼쪽)와 지난 7일 서울 은평구에서 합정역 방향 6호선 지하철 안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조한준씨(62)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박채연 기자
노란 리본의 무게
시민들은 노란 리본을 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저마다 ‘리본의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었다.
여민희씨(53)는 지난 1월 조끼에 달고 있던 세월호 배지를 보고 한 노인이 “그걸 왜 달고 있냐”며 욕하는 일을 겪었다. 여씨는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노인의 일행이 정중히 사과했다”며 “세월호 참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로써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그분께 꼭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만난 서지우양(18)은 초등학교에 진학 후 생존 수영을 배우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서양은 이후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았다. 서양은 정치적인 성향을 얘기하면서 자신에게 “왜 리본을 달고 다니느냐”고 말하는 어른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서양은 “추모의 의미로 달고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당황스러웠다”며 “어디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든 간에 참사를 추모하는 게 먼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대학생 권순원씨(27)는 2018년 대학 신입생 때 학생회 활동을 하며 노란 리본을 나눠준 적이 있다.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권씨는 “당시는 그래도 우호적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반응일지 모르겠다”며 “지금이라면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권씨는 “고향에 가면 친구들이 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지 묻는다”며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도 있지만, 비웃음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근처에서 만난 권순원씨(27)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여민희씨의 가방에 노란리본과 함께 보라색 리본이 달려 있다. 김태욱 기자
“노란 리본을 본다면, 참사를 한 번만 떠올려주세요”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만난다면 참사를 한 번씩만 떠올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지윤씨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게 심리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참사라는 사회적 무게를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순원씨는 “이태원 참사 등 참사가 반복되고 있고, 여전히 생명보다 행정적·경제적 효율성이 우선시 되는 세상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달라”고 말했다.
여민희씨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유가족이 이제 괜찮다고 할 때까지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게 함께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에서 만난 조문영씨(51)는 “시민들 사이에 적대가 점점 커지면서, 유가족·생존자의 ‘권리 요구’를 혐오 표현으로 폄하하는 일이 느는 것 같다”며 “유가족이 권리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 저항해온 과정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도 노란 리본의 의미가 전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가은씨는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온라인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고 정정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시민·유가족들이 ‘악플’(악성댓글)이 전체 여론이 아니란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문영씨는 “유가족이 여학생 가방에 세월호 리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감동적이라고 느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노란 배지 하나, 포털 댓글 하나가 유가족에겐 정말 소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