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다주택자 A씨는 오는 17일부터 시행되는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 제한을 앞두고, 전세 세입자가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 한 채를 팔려다 혼란에 빠졌다. 이 아파트는 2028년 3월1일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데 한 부동산 중개업소는 “매매가 어렵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상 실거주 의무 유예가 적용되지 않아 매매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부동산 중개업소는 “매매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거래 의무 유예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A씨는 “양도세 중과, 보유세 부담을 피하고 싶어 매매를 하려고하는데 매매가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몰라 답답하다”고 15일 말했다.
최근 정부가 5월 9일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다주택자의 전세 낀 주택 거래의 ‘퇴로’ 마련을 위해 토허제 적용 예외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예외 적용 시점’을 두고 시장 일각에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혼선은 실거주 의무 유예가 적용되는 임대차 계약 시점이 발표때마다 다르게 제시되면서 발생했다.
지난 2월12일 정부는 다주택자가 5월9일까지 토지거래허가와 매매 계약을 완료했다면 토허제상 실거주 의무를 임대차 종료 시점까지 유예하도록 했다. 이날 발표에선 단서가 붙었다. 발표일인 2월12일 기준 유효한 임대차 계약이어야 하며, 늦어도 2028년 2월12일까지는 임대차 계약이 종료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2028년 3월1일에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A씨 주택의 경우 실거주 의무 적용 예외를 적용받을 수 없었다.
이 기준은 지난 2월 개정 시행령에 반영돼 공포·시행됐다. 이후 5월9일까지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한 경우까지 실거주 의무 유예가 적용되도록 또 개정돼 오는 17일까지 입법예고된 상태다.
문제는 지난 1일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방안에서 다른 기준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만기 연장을 제한하면서 ‘전세 낀 매물’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또 한번 퇴로를 열었다. 세입자와 주담대가 존재하는 주택의 경우, 올해 12월31일까지 무주택자가 이 집을 매수하고 토허제 신청을 하면 기존 세입자의 임대차 종료 시점까지 실거주 의무를 유예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때는 2월 발표와 달리 유효한 임대차 계약 체결 시점이나 유예 적용 범위 등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경우 올해 4월1일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거나 갱신한 경우에도, 연말까지 토허제 신청만 한다면 2028년 4월1일까지 실거주 의무가 유예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2028년 3월에 전세계약이 종료되는 A씨의 ‘전세 낀 매물’도 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오는 17일부터 대출 만기 연장 제한이 시작되는데도 정책에 ‘공백’이 남아있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4월1일 발표된 토지거래허가 관련 실거주 유예 세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현재 시행령 개정을 위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A씨가 지난 1일 발표 내용만 믿고 중개업소나 지자체를 찾아도, 뚜렷한 답을 듣지 못한 이유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같은 다주택자 매물이라도 적용 규정에 따라 거래 가능 여부가 달라지면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은 “로드맵 없이 그때그때 대응하다 보니 토허제가 누더기처럼 정합성 없이 운영되고 있다”면서 “앞서 발표한 정책을 뒤이은 대책으로 계속 허물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발표될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 낀 매물과 관련된 대책에서도 실거주 의무 예외가 적용되면 토허제의 실효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토허제 예외 규정이 계속 추가되는 것을 규제 완화 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최근 매물이 늘어나기보다 오히려 매도자들이 가격을 올리거나 관망하는 모습이 나타난 이유”라고 말했다.
심 전문위원도 “매물 출회를 유도하려다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