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협상 타결’ 낙관에도 ‘경제적 분노’ 작전 개시
이란산 원유 제재 재개, 중국 은행 ‘2차 제재’ 가능성도
이란군, ‘홍해 봉쇄’ 첫 경고…협상력 키우는 압박 전략
호르무즈 해협 인근 페르시아만에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 중인 이란이 종전 합의 조건 중 하나로 제한적인 해협 개방을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 타결을 낙관하는 상황에서 이란 측도 협상을 위해 일부 양보할 수 있다는 신호를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미·이란은 협상을 위한 물밑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겉으로는 위협을 주고받는 강온 양면 전략을 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5일(현지시간) 이란 정부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호르무즈 해협 내 오만 영해를 오가는 선박은 공격하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오만 사이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34㎞ 정도에 불과한데, 오만에 가까운 항로는 열어주고 통항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식통은 이란이 해당 수역 내 기뢰 제거에도 동의할지, 적국인 이스라엘을 비롯해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허용할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이 제안의 성사 여부는 미국이 이란의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에 달려 있으며, 이는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돌파구를 찾는 데 핵심 조건이었다고 전했다.
서방 측 소식통 역시 “오만 영해를 통한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 방안이 논의됐다”면서도 미국 측의 반응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백악관과 이란 외교부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이란의 이 같은 제안은 최근 몇 주 동안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 행사를 강경하게 주장해 온 기존 태도에서 처음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로이터는 이번 제안이 전쟁 발발 이전 자유로운 통항이 가능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기존 질서’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이란 대표단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돌아온 후에도 파키스탄을 통한 미국과 메시지 교환이 여러 건 이어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동시에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면 홍해까지 봉쇄할 수 있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하탐 알안비야의 알리 압돌라히 소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봉쇄 조치가 계속될 경우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이란의 강력한 군대는 페르시아만, 오만만, 홍해를 통과하는 그 어떤 수출입 활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 온 상황에서 이란군이 공식적으로 홍해 등 주요 해상무역 추가 봉쇄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 군부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내놓은 것은 2차 협상을 앞두고 이란 측이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도 마찬가지로 대이란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까지 이란과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면서도 SNS 트루스소셜에는 대이란 해상봉쇄에 협조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대응한다는 미군 중부사령부의 경고 방송 영상을 올렸다. 별다른 설명을 달진 않았지만 이란에 협상 타결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이란산 원유 제재를 재개한다고 공식화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중국 등 제3국에 2차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전날 이란에 대해 ‘경제적 분노’ 작전을 발표했다”며 “이란산 원유를 구매하거나 이란 자금이 은행에 예치돼 있다면 매우 강력한 조치인 2차 제재를 적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란은 우리 군사작전에서 목격한 것과 동등한 수준의 금융적 타격이 될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베선트 장관은 중국 은행 2곳을 상대로는 이란 관련 거래를 지원하는 사실이 밝혀지면 2차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고도 덧붙였다. 2차 제재는 특정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자에 대해서도 제재를 부과하는 것으로, 미국 정부가 이란 ‘돈줄 죄기’ 조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AP통신은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굴복시키기 위해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대신 경제적 압박에 방점을 둔 전략으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