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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 지워진 이름

입력 2026.04.16 18:15

수정 2026.04.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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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지난 3월15일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지난 3월15일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직장에서 여성들이 이름 대신 ‘미스 김’ ‘미스 리’ 등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영미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붙이는 ‘미스(Miss)’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 본뜻에 상관없이 결혼을 해도 한번 ‘미스 김’이면 영원히 ‘미스 김’으로 불렸다. ‘미스’ 호칭엔 여성 비하와 차별적인 시선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 남성을 도와 허드렛일이나 하는 무명의 존재로 여겼기에 통용되는 호칭이었던 것이다. 입사 동기인 남성 동료들조차 “미스 김, 커피 한잔” 하기 일쑤였다. 그냥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도, 숙녀 이름을 어떻게 마구 부르냐며 굳이 ‘미스’라는 호칭으로 당사자를 거슬리게 하던 것이 엊그제다.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명성의 호칭은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뭉뚱그리는 데 쓰인다. ‘아저씨’ ‘이모’ 등으로 부르는 것은 위아래를 따지는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 정도만 돼도 견딜 만하다. “야! 이 ○○○아’, 우린 이름이 없어요.”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조사’에서 한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이들은 이름 대신 ‘야’ 또는 국적이나 외모를 묘사해 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관리자들은 이름이 어려워서라고 둘러대지만, 그 바탕엔 그들을 ‘익명의 노동력’으로 여기는 저열한 인식이 깔려 있다.

해외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현지인으로부터 차별 대상이 됐다는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한국인들은 공분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차별과 부당 행위는 외면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지난해 2월 전남에서 ‘이주노동자 이름 불러주기 운동’이 시작됐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 이름이 적힌 안전모를 지급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이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사무금융우분투재단·전태일재단 등이 17일 고용노동부와 ‘이주노동자 노동권익향상 및 이름불러주기’ 공동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용하려는 작은 날갯짓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응우옌씨’ ‘디하수씨’,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익숙지 않은 발음을 익혀 그대로 불러주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이름보다 더 좋은 호칭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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