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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에 숨을 불어넣다

입력 2026.04.16 19:51

수정 2026.04.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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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4월은 기억의 시간이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옅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연하게 날이 서는 기억도 있다. 안산의 4·16 목공소가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음 둘 곳 없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다. 그곳은 단순히 나무를 깎는 작업장이 아니다. 상실 이후의 시간을 견디고 부서진 존재의 파편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수행의 장소다. 이전을 앞둔 목공소에서 만난 한 유가족의 말이 화인처럼 남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고사목을 가져다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했다. 도시 한편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살다가 죽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일. 거친 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문지르는 목수의 마디 굵은 손가락 끝에는 슬픔을 어루만지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상실을 다루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나무를 다듬으며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도 함께 어루만졌을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 하나가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 때, 우리는 거대한 상실의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유한한 인간은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희생자 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희생자 의식은 고통을 박제하고 자신과 세계를 단단히 묶어버린다. 그 자폐적 공간에서는 어떤 가능성도 자라지 못한다. 삶은 좁아지고, 결국 자신이 겪은 불행이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감옥이 된다.

그러나 고통이 우리를 완전히 규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목공소의 고사목이 그러하듯, 삶의 균열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서를 엿보게 된다.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를 문갑으로, 의자로, 상패로 바꾸는 그 ‘전환의 능력’이야말로 무너진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안산의 작은 목공소에서 피어난 이 낮은 목소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포성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오늘날 전쟁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드론이 하늘을 가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튼 하나로 생사가 결정된다. 하이테크 시대의 전쟁은 비인간적일 만큼 효율적이다. 세계는 점점 더 위험한 곳이 되어가고, 우리는 그 불안을 일상처럼 견디며 산다.

시인 정현종의 시구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마음을 발사합니다.” 시인은 미사일과 전폭기가 나는 하늘에 두루미와 기러기, 도요새를 날려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현실에 적응한 사람들은 시인의 이런 상상을 어처구니없다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시적 상상력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폭력의 무게에 짓눌려 더 깊은 우울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고사목이 다시 쓰임을 얻듯이, 인간에게도 전환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발현된다. 나무를 심는 사람, 씨를 뿌리는 사람, 고통받는 이들 곁에 조용히 머무는 사람, 그리고 타인의 슬픔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 이들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못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 상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4·16 목공소에서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세상 도처에 우리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망을 딛고 일어나 더 나은 세계를 향해 함께 걷자고 손을 내민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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