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7일, 희망제작소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민간 모금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20년을 버텨왔다는 사실은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민간 싱크탱크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온 여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성취 위에 서서, 다시금 다음 단계의 과제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과학의 고전적 틀인 국가·시장·시민사회라는 삼분 구도로 보면, 1960~1970년대 한국은 국가라는 거대한 거인이 압도적으로 앞장서던 시대였다. 시장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어린아이였고, 노동과 시민사회는 차가운 땅 밑에 짓눌린 씨앗이었다. 국가는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발전국가로서 강력한 동력을 행사했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시장은 국가의 보호 속에 성장했다. 그 이면에서 시민사회와 노동은 억압 속에서도 저항하며 자신을 키워갔다. 1980년대는 이 두 힘이 정면으로 맞부딪친 격동의 시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전환점으로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 시민사회와 노동은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며 공공성과 투명성을 끌어올려왔다. 권위주의라는 두꺼운 외투는 낡아졌고, 정경유착과 시장의 불투명성을 바로잡으려는 개혁의 파도가 이어졌다.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감시가 세상을 바꾸어온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변화의 결과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성취는 동시에 새로운 조건을 낳았다. 나는 이것을 ‘성공의 위기’라 부르고 싶다.
투쟁역량 넘어 대안정책역량으로
시민사회의 힘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투쟁역량이고, 다른 하나는 대안정책역량이다. 투쟁역량이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촉발하는 힘이라면, 대안정책역량은 그 변화를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이다. 이제 시민사회와 노동은 투쟁의 근력을 넘어, 대안정책이라는 설계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민사회의 요구는 정당에 위임되거나, 관료제 속에서 ‘민원사항’으로 흩어지고 만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사회 자체의 성격 변화가 놓여 있다. 나는 이를 ‘단순성의 시대에서 복합성의 시대로의 이행’이라 부른다. 과거의 문제는 선과 악, 민주와 반민주처럼 비교적 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외 요인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서로 다른 정당한 가치들이 충돌한다. 복지와 재정, 노동과 경쟁력, 성장과 환경은 모두 옳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부딪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싱크탱크적 지혜가 절실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시민사회 내부에서 나타난다. 민주화는 자유와 권리에 민감한 ‘전투적 시민’을 만들어냈다. 권리는 이익을 추구할 권리까지 포함하기에, 오늘날 시민의 전투성은 때로 최대이익을 향한 전투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의사파업과 같은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고, 가치와 가치가 맞부딪친다.
아울러 시민사회 내부의 정치적 성격도 변화했다. 진보적 시민사회뿐 아니라 보수적, 때로는 극우적 시민사회도 등장했다. 노동 내부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로 분화됐다. 모두가 전투적 역량을 갖게 되니, 이제 국민을 향한 설득의 지혜가 새롭게 요구된다.
시민사회의 투쟁이 성공할수록, 그 대상은 변화한다.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은 전문적 정책역량을 바탕으로 개혁을 선도했다. 그러나 그 성공이 국가와 시장을 변화시키면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감시가 성과를 낼수록 그 대상은 더 정교해지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대응이 요구되는 역설이다.
오늘날 시민사회는 다양한 권리와 이익이 동시에 분출하는 공간이 되었다. 개인과 집단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은 일상화된다. 그 모든 것을 억누르지 않고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방향으로 조정해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치적·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즉각적 전투성만 강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싱크탱크적 기능의 재강화가 절실하다.
희망제작소, 노사연, 사걱세, 동전…
제가 아는 한, 다양한 희망적인 흐름들이 있다. 노동 부문에서는 정책역량이 이전보다 강화되고 있다. 30년이 지난 ‘노동사회연구소’(노사연)도 있다. 20년 가까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같은 정책형 교육시민운동의 모범 사례도 있다. 거의 40년에 가깝게 ‘동향과 전망’(동전)이라는 잡지를 내는 사회과학연구소 그룹도 있다. 20년을 버텨온 희망제작소 역시 그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은 이미 강력한 정책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국가 정책연구소들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고, 기업 역시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싱크탱크를 운영한다. 반면 시민사회의 대안정책역량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제 시민사회도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지혜의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때, 정당의 싱크탱크적 기능 또한 강화되고, 나아가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공약의 구성 과정이 ‘정책 떴다방’처럼 작동하는 관행을 넘어서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이제 그 시선은 지역과 국가를 넘어 지구적 의제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지구적 연결성이 크게 강화된 오늘의 조건에서, 대안정책역량 역시 그에 걸맞게 확장되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주변 국가가 아니다.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국제 문제를 ‘외부의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민사회와 노동은 더 이상 저항의 주체에 머물 수 없다. 이제는 설계하는 주체로 나아가야 한다. 저항의 함성을 배경으로, 내일의 설계도를 그리는 시민의 지혜를 강화해야 한다. 투쟁이 만들어낸 공간을 정책으로 채우고, 그 정책을 지속 가능한 제도로 완성해내는 힘. 나는 그 힘이 강화될 때,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에는, 시민사회의 싱크탱크적 역량의 재강화가 놓여 있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