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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오늘날 경전은 배제와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문제는 이런 경전의 형식이 근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의 '솔라 스크립투라'는 타락한 교회에 맞서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지만, 그 과정에서 경전은 따지고 판정해야 할 텍스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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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경전을 빚고, 경전의 문자에 갇혔다

입력 2026.04.16 20:08

수정 2026.04.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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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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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탄생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영목 옮김

교양인 | 864쪽 | 4만2000원

4만년 전 매머드의 상아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사자 인간’ 조각상. 몸이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는 데서 예술과 종교의 연결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경전의 탄생>은 ‘성스러움’을 체험해온 역사를 따라가며, 경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실천으로 이끄는 가르침이었음을 보여준다.  교양인 제공

4만년 전 매머드의 상아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사자 인간’ 조각상. 몸이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는 데서 예술과 종교의 연결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경전의 탄생>은 ‘성스러움’을 체험해온 역사를 따라가며, 경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실천으로 이끄는 가르침이었음을 보여준다. 교양인 제공

시대에 응답하며 덧쓰여 온 경전
종교가 폭력·배제 정당화하는 데
증거 텍스트로 쓰는 도구이기도

본질 잃고 축자적 해석 집착 세태
“체제 뒷받침 아닌 책임 물어야
복음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인 것”

“전투적 무신론자는 창조 신화가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서를 거짓말투성이라고 비난해 왔으며, 반대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창세기>가 모든 세부에서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창조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지하드 전사들은 쿠란에서 범죄적 테러 행위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인용한다. 종교적 시온주의자들은 성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증거 텍스트’를 인용한다.”

오늘날 경전은 배제와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모든 일은 경전에 오명을 남겼다. 종교와 문명의 역사를 탐구해온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문제는 경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자 그대로, 자기 입장에 유리한 증거로만 끌어다 쓰는 협소한 읽기 방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미토스(신화)를 버리고 오직 로고스(이성)만을 동력으로 삼은 근대인의 정신이 경전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축자적 해석에 갇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전의 탄생>은 종교적·철학적 사유가 ‘경전’이라는 형식 속에서 어떻게 빚어지고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역사서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 영향을 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전승부터 기독교 성경, 이슬람의 쿠란, 중국의 유교 경전, 인도의 베다 전통, 유대 랍비들의 탈무드, 여기에 불교의 경전까지 주요 종교 전통의 위대한 경전들을 시공간을 종횡하며 펼쳐낸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경전이 처음부터 완결된 채 주어진 고정불변의 교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유대교 경전은 나라의 멸망 같은 큰 사건들을 겪으며 편집된 텍스트였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에서 따로 전해지던 이야기와 율법, 예언의 전통은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바빌론 유수, 페르시아 시대의 귀환과 재건을 거치며 차츰 한데 엮였다. 공동체는 이런 파국을 겪으며 자신들의 기원과 고난의 의미를 끊임없이 다시 썼고, 그 축적이 곧 경전이 됐다. 기독교 성서 역시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기억이 여러 복음서와 서신, 초기 공동체의 해석과 논쟁을 거치며 정전의 형태를 갖춘 결과물이었다. 쿠란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진 계시가 공동체 안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 구전되었고, 이후 정리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경전은 공통적으로 사회 정의와 공평, 공동체의 윤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물었다. 경전은 시대의 재난에 응답하며 공동체가 끊임없이 덧쓰고 해석해온 ‘현재진행형’의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경전은 눈으로 읽고 공부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득하는 것이었다. 히브리 성서는 공동체의 낭송과 의례 속에서 살아났고, 쿠란은 이름 자체가 암송을 뜻할 만큼 목소리와 청취의 텍스트였다. 인도의 베다는 운율과 음가를 지닌 성가로 전승됐으며, 불교 경전 역시 독송과 명상, 의례의 반복 속에서 몸에 새겨졌다. 경전은 눈으로 훑는 문장이 아니라 소리이자 노래였고, 침묵이자 의례였으며, 인간을 문자 너머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경전 예술’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전의 형식이 근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의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서)는 타락한 교회에 맞서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지만, 그 과정에서 경전은 따지고 판정해야 할 텍스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떡과 포도주의 성찬을 두고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을 은유와 암시로 볼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지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 변화를 보여준다.

계몽주의의 ‘솔라 라티오’(오직 이성)는 이 경향을 더욱 밀어붙였다. 한국 보수 기독교와도 밀접한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 흐름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결과였다. 진화론과 신학적 현대주의에 맞서 성서의 무오성과 축자적 권위를 내세운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뒤 천년왕국이 열린다고 보는 ‘전천년주의’와 결합하며 근대의 혼란 속에 놓인 신자들에게 강한 확신과 위안을 제공했다. 1925년 미국에서 진화론 교육을 둘러싼 ‘스코프스 재판’은 근본주의 진영을 문화적으로 수세에 몰아넣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공적 공간에서 물러난 근본주의는 자신들의 교회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성서 축자주의는 더 강한 정체성의 언어가 됐다. 그 반동 속에서 <창세기>를 6000년 전의 실제 역사로 읽는 창조론적 독법이 근본주의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사우디 왕가와도 관계가 깊은 18세기 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은 초기 이슬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근대의 충격과 식민지 경험을 거치며, 경전을 경직되게 읽는 반동적 흐름이 힘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쿠란의 일부 구절은 역사적 맥락을 잃은 채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소환됐고, 지하드 역시 자기 수양과 윤리적 분투를 포함하던 더 넓은 뜻에서 무장 투쟁의 의미로 축소됐다.

암스트롱이 끝내 복원하려는 것은 경전의 권위보다 그 권위가 지향해야 할 ‘케노시스’(자기 비움)의 윤리, 곧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연민과 실천이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일관되게 겨눈 것은 약자를 외면한 부와 권력이었고, 예수 또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자신에게 한 일이라고 가르쳤다. 일신교에 뿌리를 둔 종교와 국가들의 폭력이 전 세계를 적대의 소용돌이에 밀어넣는 오늘날, 이 책의 문제의식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치와 성서는 공생적 관계 속에서 공존해야 한다. 그래야 경전이 종교나 정치 기성 체제의 편리한 도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경전은 기성 체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문자 속에 갇혀버린 경전을 다시 사랑과 실천의 언어로 되돌려놓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성스러움’의 감각을 일깨우는 보기 드문 종교사 책이다.

[책과 삶]인간은 경전을 빚고, 경전의 문자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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