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루 다큐멘터리 시리즈 <‘보그’: 90년대>(2024)에 출연한 애나 윈투어. 왓챠피디아, 디즈니+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2편으로 돌아온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 빈틈없는 판단력으로 모두를 긴장시키는 패션 잡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관심이 높은데요. 다양한 영화 홍보 일정 중 특히 시선을 사로잡은 협업이 있습니다.
미란다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잘 알려진 패션지 ‘보그’ 전 편집장 애나 윈투어와 미란다 프리슬리의 만남을 보그가 직접 추진했습니다. 76세로 동갑인 윈투어와 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보그 5월호 표지를 장식하며 인터뷰, 콘셉트 영상 등을 함께했습니다.
<보그> 5월호 커버 비디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와 그의 모티브 실존인물인 애나 윈투어 보그 전 편집장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은 포즈를 취해 보이고 있다. 보그 갈무리
저는 패션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패션쇼는 더 먼 세계의 일로 생각했죠. 그래서 윈투어가 ‘패션계 교황’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망이 높다는 것도 이 협업을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됐습니다. 지난해까지 37년간 미국 보그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패션 행사 멧 갈라를 총괄하는 인물이라는 것도요.
디즈니+에서 훌루의 6부작 다큐멘터리 <‘보그’: 90년대>(2024)를 보기 시작한 건 대단한 수식어들보다는, 그가 뿜어내는 고상한 분위기에 이런 궁금증이 생겨서입니다. ‘그 대단한 메릴 스트리프 옆에서도 아우라가 죽지 않는 저 멋진 여자는 누굴까?’
훌루 다큐멘터리 <‘보그’: 90년대> 포스터. 디즈니+ 제공
보그를 중심으로 90년대 패션계를 돌아보는 이 다큐멘터리는 1화부터 제 궁금증을 충족시켜줍니다. 영국 보그에서 미국 보그로 넘어온 윈투어가 편집장으로 부임한 후 ‘드림팀’을 어떻게 꾸렸는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윈투어와 패션쇼 1열에 초대받는 보그의 패션 디렉터들이 직접 출연해 그 당시를 회상합니다.
“주변에 생각이 같은 사람만 있으면 재앙일 수 있어요.” 윈투어의 말에서는 그가 늘 자기 뜻대로 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와는 사실 다른 성격의 리더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윈투어는 일부러 자신과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른 이들을 영입합니다.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이 대표적입니다.
보그 미국판의 그레이스 코딩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맨 왼쪽), 안나 윈투어 편집장, 그리고 패션 에디터 빅토리아 스미스가 2014년 2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4년 가을 메르세데스벤츠 패션위크 기간 중 캐롤리나 헤레라 패션쇼에 참석해 앉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그 관계자들 이외에도 90년대를 풍미한 모델, 배우, 디자이너들이 총출동합니다.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 기네스 펠트로, 니콜 키드먼, 킴 카다시안, 미우치아 프라다,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 지금도 전설적인 셀러브리티들이 90년대 패션계를 뒤흔든 사건, 쇼, 트렌드를 돌아봅니다.
지금은 전형적으로 자리 잡은 패션쇼, 화보의 모습들이 20여 년 전에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도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유행의 끝에는 그 반작용으로 또 전혀 다른 요소를 가진 것들이 인기를 얻게 되는데, 주류에 반하는 시도를 용감히 해내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패션모델들이 주목받다가, 인기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시상식이나 영화 속에서 브랜드의 옷을 입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허름한 ‘그런지’룩이 언제 유행했냐는 듯 화려한 글래머룩이 사랑받기도 합니다.
1990년 피터 린드버그가 촬영한 영국 보그 1월호 표지. 나오미 캠벨 등 모델 5명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 표지는 ‘슈퍼모델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영국 보그.
윈투어는 그 안에서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창작자를 발굴·지원하는 것을 사명처럼 생각합니다. 에이즈로 많은 동료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쉬쉬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다는 생각에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협업해 의상 바자회를 열어 에이즈 연구 등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다음의 패션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유명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패션계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2026년 현재의 패션계는 여전히 별세계의 일 같기는 하지만요.
1990년대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요즘의 패션계 종사자들의 새로운 고민은 무엇일지가 되레 궁금해집니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 예전 같지만은 않은 패션 및 언론계를 배경으로 한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가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을까요? 20년 만에 만나게 될 미란다를 더 기다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