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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낭만…‘야장’, 당장, 입장

입력 2026.04.18 09:00

수정 2026.04.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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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골목, 야장으로 변신

세월의 흔적 위에 힙한 감성

플라스틱 테이블이 깔리고 병뚜껑이 튀는 파열음 위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인다. 생활 동선이던 시장 골목이 하나의 거대한 맛집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봄 햇살이 따뜻해지면서 젊은 세대가 모여드는 곳, 전통시장 내 펼쳐진 ‘야장(야외에서 테이블을 놓고 먹는 음식점)’ 풍경이다.

14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을 찾은 시민들. 2026.04.14. 정효진 기자

14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을 찾은 시민들. 2026.04.14. 정효진 기자

레트로와 힙의 공존, 신흥시장

해방촌 언덕 위 신흥시장은 원래 ‘핫플’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전쟁 직후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생활형 시장으로, 이후 봉제공장이 들어서며 지역 경제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대형마트와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시장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졌다.

전환점은 도시재생이었다. 서울시가 해방촌 일대를 재생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물리적 정비가 이뤄졌고, 동시에 외부의 젊은 창업자들이 유입됐다. 이들은 공간을 완전히 새로 짓기보다 기존 흔적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낡은 간판과 기울어진 골목, 오래된 구조 위에 카페와 바, 식당, 작은 상점들을 덧입혔다. 이로 인해 신흥시장은 전형적인 상업 공간과 다른 결을 갖게 됐다.

한국의 오래된 골목과 유럽의 작은 언덕 마을이 겹쳐 보이는 듯한 ‘규정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가득한 신흥시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 중이다.

한국의 오래된 골목과 유럽의 작은 언덕 마을이 겹쳐 보이는 듯한 ‘규정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가득한 신흥시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 중이다.

공간 구조도 독특하다. 시장 전체는 ‘ㄷ’자 형태로 이어진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바퀴를 돌게 되는 구조다. 경사진 지형이 만들어내는 시선 역시 이곳의 핵심이다. 한 지점에 앉아 있어도 아래쪽 가게의 불빛과 위쪽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온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분위기는 더 또렷해진다. 노란 조명이 켜지고, 테라스와 계단, 난간 위에 와인잔과 맥주잔이 올라선다. 현재는 치킨, 횟집, 태국 음식, 국수, 미국식 퓨전 중식당 등 다양한 맛집과 독특한 카페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한국의 오래된 골목과 유럽의 작은 언덕 마을이 겹쳐 보이는 듯한 ‘규정하기 어려운’ 감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 중이다.

‘오래된 시장’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 영등포 시장을 변화시킨 것은 별도의 브랜딩도, 재생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골목 안쪽 고깃집, 노포 스타일 술집, 간이 테이블을 내놓는 가게들이 밤의 풍경을 바꿨다.  사진 제공 @nomnom_zip

‘오래된 시장’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 영등포 시장을 변화시킨 것은 별도의 브랜딩도, 재생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골목 안쪽 고깃집, 노포 스타일 술집, 간이 테이블을 내놓는 가게들이 밤의 풍경을 바꿨다. 사진 제공 @nomnom_zip

종로에 맞서는 오래된 정, 영등포시장

1970~1980년대 유통의 중심지로 기능하던 영등포시장은 공산품과 의류, 잡화를 사고파는 전형적인 도심형 시장이었다. 낮에는 인근 공장과 상업시설을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밤의 활기는 늘 주변 번화가의 몫이었다. 그마저도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플랫폼이 일상을 장악하면서 시장은 점점 경유지로 밀려났다.

‘오래된 시장’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 이곳을 변화시킨 것은 별도의 브랜딩도, 재생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골목 안쪽 고깃집, 노포 스타일 술집, 간이 테이블을 내놓는 가게들이 밤의 풍경을 바꿨다.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지글지글 소리와 고기 냄새,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 빠르게 오가는 주문이 골목 전체를 하나의 큰 놀이터로 만들었다.

규모는 크지 않다. 지하쇼핑센터 4번 출구 앞 좁은 골목, 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이 전부다. 대신 분위기는 훨씬 밀도 높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 옆자리와 대화를 트는 일이 낯설지 않다. 가게와 손님의 경계도 느슨하다. 메뉴 역시 직관적으로, 고기, 해산물, 전, 국물 위주다.

가게 앞을 덮는 천막과 지붕이 있어 비가와도 야장이 유지된다. 이곳을 즐겨 찾는 직장인 정현목씨는 “약간의 불편함과 즉흥성이 남아 있는 장소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영등포시장 야장 골목은 계획되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라, 살아남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더 끌린다”고 말했다.

현재 뚝도시장은 ‘대체’가 아닌 ‘겹침’의 공간으로 읽힌다.  다양한 음식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된 ‘청춘 야시장’ 행사도 꾸준히 열리며 지역 커뮤니티와 소비를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성동구 제공

현재 뚝도시장은 ‘대체’가 아닌 ‘겹침’의 공간으로 읽힌다. 다양한 음식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된 ‘청춘 야시장’ 행사도 꾸준히 열리며 지역 커뮤니티와 소비를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성동구 제공

성수다움이 스며든 뚝도청춘시장

성수동 상권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사람들은 더 이상 성수가 아닌 곳에서 성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닿은 곳이 뚝도청춘시장이다. 청년들이 유입됐지만 공장 노동자들이 드나들던 식당과 생활형 점포까지 침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워지지 않은 풍경 위에 새로운 장면이 덧붙었다.

현재 뚝도시장은 ‘대체’가 아닌 ‘겹침’의 공간으로 읽힌다. 정육점과 와인바, 분식집 옆 브런치 가게, 전통 해산물 포차 옆 타코집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한다. 삼겹살 굽는 연기 옆에서 와인잔이 부딪치고, 오래된 간판 아래에서 젊은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다. 메뉴가 다양해 가게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동시에 이곳은 전통 상인과 청년 상인이 함께 시장을 구성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다양한 음식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된 ‘청춘 야시장’ 행사도 꾸준히 열리며 지역 커뮤니티와 소비를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세 시장은 모습도, 특색도 다르다. 하지만 ‘머무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철 소비 트렌드 분석가는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포장마차 특유의 낭만적인 감성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골목 시장의 조명, 사람의 움직임, 테이블 위의 음식까지 모두 하나의 서사가 된다.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이동하고 있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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