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오브제 ‘함께 조각’ 만들어 전시…부부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
신체 마비 이후 달라진 몸의 경험을 기록하며 이를 창작으로 확장해온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의 송지은·Q레이터 작가가 광목천으로 제작된 웨어러블 오브제 ‘함께 조각’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전시 준비가 한창인 갤러리에서 낯선 옷을 마주했다. 커다란 망토 같은데, 길고 목을 넣는 구멍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제아무리 ‘패셔니스트’라도 결코 혼자 입을 수 없다. 몸과 몸이 맞닿고 기대며 움직일 때 비로소 형태가 완성되는 관계의 구조를 담은 웨어러블 오브제 ‘함께 조각’이다.
지난 16일부터 열린 ‘2026 모두공감기획전 - 관계의 기술: 기꺼이 기어이 기대어’를 기획한 박시내 대리는 “입을 수 있는 조각”이라고 정의했다. 이 특별한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의 Q레이터(이기언 작가의 활동명)·송지은 작가는 “휠체어를 탄 분도 착용할 수 있는 형태”라며 “다양한 신체가 같이 입고 속도를 맞춰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조각’은 우비에서 출발했어요.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면 Q레이터는 지팡이를 못 짚고, 우산을 씌워주자니 제가 비를 많이 맞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비 오는 날도 같이 걸어 다닐 수 있을까. 그래서 한 작업이 ‘둘이 입는 우비’였어요.”
‘함께 조각’은 그 연장선에 있다. 작품은 두 사람이 함께 입는 형태부터 세 명, 네 명이 동시에 착용하는 구조까지 다양하다. 어떤 것은 구성원 중 한 명이 앞을 전혀 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또 다른 작품은 두 사람 모두 시야가 제한돼 거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 구조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의지’만이 아니다. “둘이 입으면 서로 지지하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취약성도 같이 드러나요.” 송 작가는 “관계라는 건 결국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이 말하듯, 이 작업은 ‘관계의 기술’을 묻는다. 어떻게 기대고, 어떻게 함께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작가의 신체 마비를 계기로
‘한 손 프로젝트’ 작업 시작
장애, 극복의 대상이 아닌
신체의 변화로 받아들여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서
직접 입고 체험해볼 수 있어
결국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연대의 감각’ 공유가 목적
라움콘의 대표작 하면 ‘한 손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Q레이터 작가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신체 마비를 겪으며 시작된 작업이다. 부부인 두 사람은 식사, 보행, 옷 입기 같은 사소한 행위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쓰던 일상용품들이 사실은 특정한 몸에만 맞춰진 구조라는 걸 알게 됐다. 한 손으로 장갑을 끼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고, 옷을 입을 때 소매에 팔을 넣는 동작에도 그렇게 큰 힘이 필요했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다.
왼손으로도 오른손 못지않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 한 손 젓가락. 라움콘 제공
“‘한 손 장갑’은 (Q레이터의) 신체를 배려하는 오브제이기도 하지만, 돌봄자인 저를 배려해요. 돌봄이 계속 이어지면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요. 계속 뭔가 도움을 줘야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분리할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국물을 좋아하지만 한 손으로는 그릇을 기울여가며 끝까지 먹기 어려운 Q레이터 작가를 위해 만든 ‘한 손 그릇’은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 삶의 만족감을 회복하는 방식이 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 손으로 낄 수 있는 장갑, 바닥이 기울어진 그릇, 왼손으로 쓸 수 있는 한 손 숟가락과 젓가락 등은 모두 의식주와 관련된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예술 전공자의 ‘미감’까지 더하니 의료용품 전문점에서 판매되는 고가의 보조기기보다 만족감도 컸다. 코오롱과 협업해 과감하게 소매를 없애고 숄처럼 생긴 양복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반마비를 겪는 이들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다. 송 작가는 그것이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라움콘의 작업은 장애를 극복의 서사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변화된 몸을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택한다. 2년 넘게 여덟 곳의 재활병원을 돌며 부부는 ‘내 몸이 정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너지는 이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장 많이 교감한 것은 몸의 변화를 장애가 아닌 ‘전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오른손 41세, 그동안 잘 썼다” “(휠체어를 탄) 작은 나, 작아진 나, 작지만 나” 등 스스로를 포용하는 태도가 담긴 Q레이터 작가의 글은 송 작가에게도 큰 힘이 됐다.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죠. 하지만 예술가가 40년을 한 몸으로 살다가 또 다른 몸으로 살아보는 건 축복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창작자로서 얻는 게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되게 멋있죠.”
Q레이터 작가는 오른쪽 마비 외에도 언어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베르니케 실어증을 앓고 있다. “원래는 말을 엄청 잘했다”는 그는 느려진 말 대신 드로잉으로 더 많이 표현한다. 수없이 쌓인 드로잉은 하나의 문장이 되고, 다시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인터뷰에서 직접 발언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는 작업 전반에 깊게 스며 있었다.
“부부는 싸우지만 듀오는 더 싸워요.”(웃음) 두 사람의 협업은 느리고 치열하다. 같은 문장을 30번씩 반복했던 시기도 있었다. 송 작가는 “너의 장애와 나의 경험이 계속 부딪히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실천적인 삶이지, 내가 수발을 드는 게 그런 삶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2018년 결혼식을 올리기 전 송 작가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의 삶을 기록해 알리는 거리 예술 ‘응옥의 패턴’을 기획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기획자였던 Q레이터 작가는 예술가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라움콘(laumkon)’은 Q레이터 작가가 병상에서 반복해 말한 단어에서 비롯됐다. 알고 보니 ‘양치질’을 의도한 착어였지만, “세상에 없는 단어라서, 완벽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를 담고 있는 이름 같아서” 팀명으로 삼았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뭔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감각적인 것들을 통해 교감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보고 세상이 바뀌진 않겠죠. 하지만 한 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하면 타인의 삶이 보이기 시작해요.” 송 작가의 말은 예술의 역할을 묻는 말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6개 작가팀이 ‘관계’의 관점으로 조명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5월23일까지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이어진다. 장애·비장애 경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워크숍도 마련된다. 관객은 웨어러블 오브제 ‘함께 조각’을 입고 체험해볼 수 있다. 낯선 타인과 한 몸처럼 걸어야 하는 경험 속에서, 익숙했던 세계의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의 삶이 조금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든, 아이든, 할아버지든, 여성이든 독립된 존재들이지만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라움콘이 공유하고 싶은 연대의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