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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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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바벨탑 재건’ 덕에 대동단결한 ‘글로벌 82년생 김지영’

입력 2026.04.19 10:30

수정 2026.04.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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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했던 인간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았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대가로 내려진 형벌은 ‘언어의 분열’이었다. 하나였던 말이 갈라진 순간,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흩어졌고 더 이상 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다. 이후 언어는 오랫동안 세계를 가르는 단단한 경계로 남았다. 그런데 지금, 기술이 견고한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최근 엑스(X·옛 트위터)가 도입한 자동번역 기능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글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문화와 지역을 넘어 생각과 감정을 즉각 공유하게 됐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 이용자들 사이에서 형성된 공감의 흐름이다.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겪어온 일상의 경험들이 자동 번역되면서 그간 ‘문화 차이’로 여겨졌던 문제들이 사실은 유사한 차별 구조였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전 세계 여성들의 이야기”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X의 ‘바벨탑 재건’ 덕에 대동단결한 ‘글로벌 82년생 김지영’

글로벌 여성들의 공감은 사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지난 10일 한 튀르키예 여성은 “어릴 적 남자들이 상석에서 깔깔대며 떠들썩하게 차를 즐기는 동안, 여자들은 먼저 그들에게 시중을 들고나서 부엌 구석이나 바닥에서 밥을 먹었다”며 “페미니스트 의식이 선택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썼다. 이 글은 곧 자동번역을 통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닿았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각국의 여성들이 “이건 우리 이야기”라고 답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한 한국 이용자는 “여자들이 명절음식 차리면 남자가 먼저 먹고 여자는 구석에서 남는 음식 먹는 거, 한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라며 원문을 리포스트했다. 그러자 “페루 이야기인 줄”, “일본이잖아”, “불행히 인도도 그래”,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야”, “폴란드 여성으로서 여기도 똑같다고 확인해줄게요”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여성들은 구체적인 사례까지 공유했다. 서아프리카 여성은 “남자들은 TV 앞에서 먹고 마시고, 여성들은 요리하고 남은 음식을 먹는다”고 썼고, 브라질 여성은 “모두 함께 식탁에 앉지만, 준비는 여성 몫이라 이미 지쳐 있다”고 했다. 일본 여성은 “남성은 식탁에서 먼저 먹고, 여성은 부엌에서 먹으면서도 ‘여기서 맛있는 부분을 먹으며 즐기고 있으니까 불공평하지 않다’라고 미화하는 게 전통”이라고 썼다. 브라질의 한 사용자는 “열 살 때 부엌으로 끌려가 설거지를 해야 했고, 그 순간 남자들은 식탁에서 웃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태국에서는 “남자들은 밥 먹고 나면 사라지고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토로가 나왔다. 멕시코의 한 여성은 “모든 모임을 책임지던 엄마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가족 모임 자체가 멈춘다”고 전했다.

국가도, 종교도, 경제 수준도 다르지만 여성들이 겪은 경험은 반복됐다. 가정에서 여성의 노동은 필수적이지만 보이지 않고, 그 희생은 ‘문화’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엑스의 자동번역은 여성들의 불합리한 경험을 연결했다. 이전까지는 각자의 언어 안에 갇혀 있던 차별들이, 이제는 하나의 타임라인 위에서 놓인 것이다. 한 튀르키예 사용자는 엑스에 “이러한 문화가 세계 공통이라고 느꼈을 때는 한국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라며 “김지영 대신 튀르키예 여성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라고 썼다. 특정 사회의 이야기로 읽혔던 서사가, 사실은 전 세계 여성들이 겪은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X의 자동번역이 드러낸 셈이다.

엑스에서 여성들이 공유한 경험은 사실 페미니즘 연구에서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가정 내 성별 분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사회학자 알리 호크실드는 이미 1980년대 ‘세컨드 시프트(second shift)’ 개념을 통해, 여성이 직장 노동 이후에도 가사와 돌봄을 떠안는 구조를 지적했다. 직장에서의 ‘첫 번째 노동’이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와 또 다른 ‘두 번째 근무(shift)’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도 돌봄 노동이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임에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고 분석해왔다.

엑스 자동번역, 글로벌 ‘공공 광장’ 만들까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이러한 논의가 세계 각지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한꺼번에 드러난 데에는 엑스의 ‘번역 방식 변화’에 있다. 엑스는 지난 7일부터 인공지능(AI) 그록을 기반으로 한 자동번역 기능을 전 세계에 도입했다. ‘번역하기’ 과정은 사라졌고, 타임라인을 넘기면 영어·일본어·스페인어·아랍어 등 전 세계 글이 한국어로 게시된다. 일부 해외 매체는 엑스의 자동번역 시도가 ‘가장 큰 문화교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해외 금융·테크 분석 플랫폼 빅고파이낸스는 “전통적인 소셜 미디어는 언어와 지역별로 구분된 ‘분리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엑스가 자동 번역 기능을 도입하며 이런 벽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엑스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그동안 “엑스를 글로벌 실시간 ‘공공 광장‘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세워온 만큼 자동번역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엑스의 자동번역은 어떤 언어로 쓰인 글도 전 세계에 도달하게 만드는 기능”이라며 “이는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플랫폼 전략의 핵심 변화”라고 짚었다.

다만 자동번역의 정확성, 문화적 뉘앙스의 전달, 오역으로 인한 오해나 반발 위험 등 여전히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일부 사용자는 의도치 않게 외국 문화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정보 과부하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엑스의 새 기능에 대해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서로 다른 국가 이용자들이 직접 연결되며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지만,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이나 갈등도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언어를 갈라놓았던 바벨탑의 저주를 거꾸로 되돌리듯, 자동번역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하나로 엮고 있다. 이 기술은 21세기 ‘바벨탑’으로 세계 곳곳의 불합리한 구조와 침묵을 드러내는 새로운 공통 언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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